[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여섯 박스의 경옥고
지난주 금요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최인기를 위한 꿀밥’ 자리를 가졌다. 얼마 전 1년2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최인기를 위로하는 소박한 자리였다. 2023년 2월10일 그와 그의 동료 다섯 명이 법정 구속됐을 때 이 지면에 ‘감옥만 여덟 번째인 최인기를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 구속 사유가 근 10여년 전인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강남구청의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연대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연대한 일로 10여년간 경찰, 검찰, 법원에 끌려다녔으면 충분한 죗값을 받은 것과 같은데 실형이라니.
감옥 안에서 그가 겪은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여전히 과밀수용이 이뤄지고 있는데, 나날이 증가하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 수용수들도 별도의 의료조치 없이 혼거방에 함께 수용하면서 힘겹고 험악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양심수’들 역시 불평불만만 많은 ‘앙심수’ 정도로 취급받으며 인권유린을 겪어야 했단다. 그의 경우 감옥 안 인권상황에 대해 항의했다는 이유로 28일간 징벌방에 갇히기도 했다. 면회도 금지당한 채 온몸을 결박하는 혁수정을 차고 어두운 벌방에서 일명 개밥을 먹어야 하는 고문 이상의 형벌이다.
가석방조차도 불평등한 나라
함께 구속된 빈민해방실천연대 전 의장 김현우 선생님 소식은 더 놀랍다. 윤석열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일베로 추정되는 동료 수형수가 나무로 된 밥상으로 폭행해 머리와 귀 쪽이 파열돼 무려 120바늘을 꿰매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지만 특별면회도, 병보석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해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 채 김 선생님은 아직도 구속 중이다. 수십 년 한국 사회 빈민들을 위해 일해온 이력과 노령에 이런 고통까지 받았으면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되는 가석방 대상이 될 법도 한데 일언반구도 없다.
반면 작년 7월 잔고증명서 위조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형기 3분의 1을 채운 후 매번 가석방 대상에 오르내리다 지난 8일 드디어 법무부 가석방 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가석방을 결정해 14일 출소한다. 이 나라에 최소한의 양심이 있고, 정의가 있고, 민생이 있다고?
내일 최인기님과 함께 구속됐던 빈민해방실천연대 최영찬 의장이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출소한다. 그러나 김현우 선생님과 최오수님이 아직 감옥에 남아 있다.
최오수님과 함께했던 2014년 5월18일 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우리는 세월호 참사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겠다며 행진을 하다 광화문 현판 아래에서 수십 겹의 경찰들에게 똘똘 말려 있었다. 그때 서울강남의료원분원 장례식장에 경찰들이 난입해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투쟁 과정에서 자결한 염호석 열사 시신을 탈취하려 한다는 긴급 연락이 왔다. 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후였다. 넋을 잃고 있는데 이번엔 다시 광화문 쪽에서 연락이 왔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쪽에 결박당해 있던 세월호 추모 청년학생들이 연행되고 있다는 긴급 연락이었다. 그날 새벽 2시경까지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운 70여명의 청년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한 명까지 강제 연행당하는 현장을 최오수 동지와 함께 지켜야 했다. 그날 연행된 청년학생 중 한 명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었던 것도 기억난다. 긴급 보도자료를 쓰며 꼬박 날을 새워야 했던 참혹한 날. 광주항쟁 추도식이 열리던 그해 5월18일이었다.
우린 모두 안녕한 것인가
출소를 축하한다고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이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 아, 묶인 이 가슴”으로 이어지는 민중가요 ‘새’를 부른 게 변통이었다. 감옥만 여덟 번째 살면서도 눈물 한 번 보인 적 없다는 최인기님이 설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억억 하며 울었다. 우리는 괜찮으니 맘껏 울기라도 하라고 했다. 기운 내라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사람들이 아직 나오지 못한 분들 몫까지 여섯 박스의 ‘녹용경옥고’를 챙겨주었다. 다음날인 지난 토요일에는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진행하는 문학예술산책 ‘민주주의와 문학’ 첫 자리로 마석모란공원 열사 묘역 순례도 다녀왔다. 얼마 전 운명하신 홍세화 선생님 묘소도 들렀는데 이덕인 장애인빈민노점상 열사 묘 바로 옆이었다. 5·18항쟁 기념일도 며칠 안 남아서인지 이리저리 상념이 많아진다. 우린 모두 안녕한 것인가.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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