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결정’ 앞두고 숨죽인 의·정…법조계 시각은

강윤서 기자 2024. 5. 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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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원고 적격 인정될 가능성 낮아…각하될 듯”
의료계 “정부, 의대 증원 결정 근거 자료 부실”
정부 근거 자료 공개…‘2000명 증원’ 23명 중 19명 ‘찬성’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안에 반발하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돼 사직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와 의료관계자 등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 정책의 존폐를 가를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의료계는 법원 결정에 따라 의대 증원 백지화까지 내다보고 있지만, '원고 적격성' 인정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갈등의 '마침표'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 후 찍힐 전망이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금주 내로 재판을 마무리 할 방침이다. 법원은 의대 증원 근거 자료를 검토하고 인용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하지 말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법원의 선택지는 크게 3가지다. 먼저 소송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각하'하거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할 수 있다. 각하 혹은 기각이 결정되면 정부는 정책 추진 탄력을 받아 27년 만에 의대 증원을 현실화할 수 있다. 반면, 의료계 바람대로 집행정지가 인용될 경우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계획은 중단된다. 

법조계에선 1심과 마찬가지로 항고심 역시 '원고(신청인) 적격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고 적격성은 '처분을 받게 되는 당사자가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뜻한다. 1심은 의대 증원 결정의 주체는 '대학의 장'이기 때문에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은 처분의 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1심과 달리 항고심 재판부가 정부에 근거 자료를 요청한 것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의사 출신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자료 검토가 핵심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사건의 핵심은 신청인 적격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판단하는 것인데 (1심에서) 이미 자격이 없는 걸로 나왔다"며 "결국 항고심도 신청인들의 적격성부터 심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신청인 적격이 인정될 경우'라는 전제를 토대로 '정부의 증원 결정 과정을 한 번 봐야 되겠다'라고 판단해 근거자료를 받은 것"이라며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고 해서 적격성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기에 1심 결과가 바뀌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법원이 근거자료를 토대로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낮다고 봤다. 정 변호사는 "신청인 적격이 인정되지 않으면 (법원의) 전제 조건이 이미 소송 기각 사유인 것"이라며 "그럼에도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그야말로 잘못된 선례가 남는 셈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너도 나도 소송을 제기할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변호인인 이재희 변호사(법무법인 명재)는 "법리로 따졌을 때 (항고심이) 신청인 적격을 인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도 "(재판부가) 일단 (정책의) 타당성에 대해 판단해봐야 한다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항고심 재판부가 1심보다 집행정지 인용에 대한 요건을 더 넓은 범위에서 검토 중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 변호사는 "1심은 원고 적격성 등 (집행정지가 인용되기 위한) 적극적 요건이 인정되지 않아서 바로 각하했지만 (항고심에선 정부의 제출 자료를 통해) 소극적 요건까지 종합 검토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자료에 대한 평가를 떠나, 아직 신청인 적격성 판단이 안 나왔기에 의사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짚었다.

가운 벗은 의사들 ⓒ연합뉴스

정부 회의록 공개…"졸속 결정" vs "2000명 근거"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근거 자료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10일 47건의 자료와 2건의 별도 참고자료를 제출했지만 의료계는 2000명 증원이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결정됐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측 법률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이날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내세운 자료를 대중에 공개했다. 의료계와 정부 양측의 해석이 극명히 엇갈리는 지점은 증원 규모를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이다.

앞서 정부는 2000명 증원을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 2월6일 보정심 회의를 개최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둔 당시 회의에는 수요자·공급자·정부위원 등 전체 참여위원 25명 중 23명이 참석했다. 불참한 2명은 대한의사협회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측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해 참석자 중 19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했다. 반대자들 발언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8년 폐교한) 서남대 같은 학교를 20개 이상 만드는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복지부는 "반대의 경우에도 규모에 대한 이견으로, 증원 자체에는 찬성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2000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문서는 증원분이 발표된 당일인 2월6일 진행된 보정심 회의록이 유일하다"면서 "이를 복지부 장관이 보정심에서 일방 통보하고 요식 절차만 거친 후 기자회견에서 발표해버렸다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맹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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