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엉터리 소송에도 지적장애인에게 내려진 무변론 판결
[KBS 제주] [앵커]
탐사K는 지적장애인 자매에게 벌어진 수억 원대 소송사기 사건을 계속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그런데, 불과 두 달 전인 올해 3월에도 지적장애인 피해자에게 또 다른 민사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탐사 K 고민주, 부수홍 기자입니다.
[리포트]
제주의 한 장애인 시설에 사는 30대 중증 지적장애인 고 모 씨.
고 씨는 3년 전 성년후견인인 형부 이 모 씨로부터 수억 원대 소송사기를 당했고, 이 씨는 구속기소됐습니다.
그런데, 지적장애인 피해자 고 씨에게 올해 3월, 또 다른 민사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고 씨가 상속받은 땅의 지분을 넘기라는 겁니다.
판결문을 살펴봤습니다.
2005년 7월 자신과 사돈지간이었던 고 씨의 아버지가 2천9백만 원을 빌려 갔고, 돈을 갚지 못할 시 딸인 고 씨 땅의 지분을 넘긴다고 약속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었습니다.
이후 고 씨 아버지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는 실종선고가 됐기에, 땅 지분을 자신에게 넘겨야 한다는 겁니다.
원고는 이와 관련해 확인서와 차용증서, 변제각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법원은 고 씨 땅의 지분을 넘기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씨와 결혼한 고 씨의 언니였습니다.
언니 고 씨가 자신의 아버지를 사돈이라고 하고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겁니다.
고 씨의 언니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지적장애인입니다.
[장애인 시설 관계자/음성변조 : "화도 너무 많이 났고. 조금만 자세히 봤더라면 사돈지간이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죠. 정말 황당했어요. (언니인) 지적장애인이 그렇게 소송 처리를 할 수 있나 그것도 의문이 들었고."]
이 확정판결도 알고 보니 상대가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내지 않거나 자백할 때 내려지는 '무변론' 판결이었습니다.
시설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고 씨가 항소하지 않아 확정된 판결, 장애인 거주시설에 거주하는 고 씨는 과연 이 판결을 알고나 있었을까?
법원은 당시 고 씨에게 소장과 판결이 모두 도달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송달받을 장소로 기재된 곳은, 소송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씨의 동생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최정규/변호사 : "피고 주소지를 원고가 직접 기재하고 법원은 그 송달 장소로 서류를 송달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법원을 속여서 어떤 유리한 판결을 받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상황입니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대응을 하기가 어렵고 또 사후에도 발견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법원이 무변론 판결로 신속하게 판결을 내리는 사이, 법과 제도에 가장 취약한 지적장애인은 자신에게 소송이 제기된 것도, 판결이 내려진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KBS 뉴스 고민주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그래픽:조하연
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부수홍 기자 (mrboo8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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