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이냐, 사익이냐…네이버 어디로
라인야후 사태가 여야 정치쟁점화하면서 네이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국민 반일감정 자극으로 라인 사태는 일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섰다. 심지어 네이버가 일본 소프트뱅크와 지분매각 협상을 벌이는 데 대해 '친일행각'으로까지 오도한다.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국익(國益)'이라는 단순논리다. 정치공세 수위가 높아지자 정부는 반일을 조장하는 정치 프레임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라인야후 사태를 두고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가, 기업의 사익과 국익이 배치되는 가치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시작은 일본이 했지만, 일본 정부가 "외교 이슈화를 원치 않는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에도 국내에선 정치권이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12일 정부가 범정부 총력대응을 하고 국민의힘도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으면 매국정부·매국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공세를 이어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독도를 방문해 대일 외교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야당의 공세에 대통령실은 "우리 기업이 불합리한 처분이나 불리한 여건 없이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면서도 야당의 반일 프레임은 국익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과 사업을 유지한다는 입장일 경우 적절한 정보보안 강화 조치가 이뤄지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협상 당사자인 네이버는 고민이 많다. 바다 건너 협상상대뿐 아니라 야당, 대통령실, 국민정서라는 복잡하게 얽힌 외부 관심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수연 대표가 회사의 중장기 사업전략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국익'을 얘기한 만큼 회사의 전략만 고려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많은 국민들은 네이버가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개발해, 유례 없는 플랫폼 수출을 이뤄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만약 지분을 정리하면 일본 정부의 요구에 굴복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 경우 최대 10조원의 매각 자금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국민 정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더 크게 볼 수 있다.
네이버 입장에서 최선은 현재 구도를 유지하면서 라인야후와의 기술적 협력을 이어가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이미 2019년 소프트뱅크와 합작사를 세우면서 지분은 같이 갖되 경영은 소프트뱅크가, 기술은 네이버가 맡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야후는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네이버와의 기술 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경영을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기술에서도 네이버 역할이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네이버는 경영권도, 기술협력 기회도 없는, 사실상 의미 없는 지분을 갖게 된다.
정부와 정치권이 네이버를 지원하려면 일본의 분위기를 되돌려서 기술협력을 놓치지 않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 부분을 그대로 두고, 경영과 기술협력 없는 지분이라도 절대 넘겨선 안된다고 압박하는 것이 사익은 물론 국익에도 도움이 될지 들여다 봐야 한다. 지분 조정이 이뤄질 경우엔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력이 우리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확실한 방어 노력을 해줘야 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엔 국제 질서를 깨트린 일본이 글로벌 차원의 제재를 받도록 제대로 힘써야 한다.
네이버 안팎에서는 해외 기업 인수합병이나 해외 진출도 국민 정서가 고려되고, 그에 따라 정부가 통제할 사항인지는 의문이라는 분위기가 있다. 네이버 측은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정서는 지분 고수를 국익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네이버 입장에서는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최악으로 치닫는 것보다는 실속 있는 엑시트가 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네이버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AI 경쟁은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쩐의 전쟁'이다. 네이버는 몇년에 걸쳐 1조를 AI에 투자하는데 메타는 올해 엔비디아의 GPU를 사는 데만 10조 이상 쓸 예정이다. 작년 10조가 안된 네이버 연매출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다. 라인야후 지분을 정리하고 최대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해 AI에 투자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의 선택은 될 수 있다.
지금은 AI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다. 네이버가 AI 기술력을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현재 국민정서의 '국익'과는 배치될 수 있다. 네이버가 주변 눈치와 압력에 최선도 차선도 아닌 최악을 선택한다면 진정한 국익이랄 수 없다. 가짜 '국익'에 진짜 '국익'이 포기될 순 없다.
유병준 서울대 교수(경영학과)는 "경영권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결국 넘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에 맞는 여러 협상을 병행해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오는 것이 네이버에 가장 중요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현재의 상황이 외국 정부가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뺏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국제법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에 나서며 협상을 지원해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헌 광운대 교수(경영학과)는 "네이버가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면 지분 가치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모두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며 "라인과 연계된 미래 사업 전개에 리스크가 되지 않도록 기반을 확보하는 게 협상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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