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외부동산 투자, 숫자와 트렌드 함께 읽어야

2024. 5. 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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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효진 마스턴투자운용 글로벌리서치팀 이사
지효진 마스턴투자운용 글로벌리서치팀 이사

독일은 2차 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어왔다.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제조업 기반의 강력한 성장 동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유럽 경제를 이끌어왔다.

상업용 부동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는 주로 수도인 런던과 파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독일은 수도인 베를린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뮌헨, 함부르크, 쾰른, 슈투트가르트, 뒤셀도르프 등 국토 전역에 오피스와 물류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이 고루 분산되어 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검토하는 국내 기관들이 지역 경제가 탄탄한 독일의 펀더멘털을 신뢰하는 것은 당연했다.

세월은 흐르는 법이고 세상은 바뀌는 법이라더니 영원히 강력할 것 같았던 독일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독일은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0.3%)을 기록하는 오명을 안았다. 팬데믹 이후 금리 인상과 재택근무의 일상화로 오피스 공실률이 치솟고, 부동산 시장이 거래 절벽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서구권 국가에서 공통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독일 경제의 약 15%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독일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보여준다. 독일이 경제 호황기에도 공공 인프라나 디지털 경제에 투자하기보다는 러시아 에너지와 대중국 수출에 의존했다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현실에 안주했던 결과 노동력 부족, 신규 수요 둔화, 비용 상승과 공급망 차질로 현재 독일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자금난과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10년대 초 복지정책을 남발해 재정위기의 진원지로 꼽혔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유럽 경제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긴축 정책에 따른 체질 개선과 투자자 유치, 노동시장 유연화, 팬데믹 이후 관광업 반등으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남유럽 국가의 관광산업은 각국 GDP의 10~15%를 차지한다. 그동안 제조업과 금융의 펀더멘털이 서유럽의 오피스 빌딩 투자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사회 구조적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로 오피스 투자보다는 관광업에 기반한 호텔과 리테일 빌딩 혹은 복합용도 건물(Mixed-use) 거래가 남유럽에서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관광 수용력을 초과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근간을 흔들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일명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다. 베네치아는 여행자 수 통제 및 입장료 부과를 시작했고, 바르셀로나는 신규 숙박업을 허가하지 않는 등 관광업 성장의 부작용에 대응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한 경계 또한 필요하다. 팬데믹 이후 높은 재택근무 비중과 기술 발전으로 도심의 빈 오피스 빌딩은 늘어가고 있고, 높은 집값과 고물가로 사람들의 거주지 역시 교외로 옮겨가고 있다. 유엔(UN)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도시화 비율은 75%에 이르고, 지리적 협소함과 환경 규제 등의 이유로 도시 내 신규 개발도 용이하지 않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56조4000억원으로 자산 가치 급락에 따라 투자 원금 손실 및 부실이 급증하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경계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체투자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리스크를 헤지(hedge)하기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숫자에만 매달리는 방식의 정량적 투자 접근법을 고수하는 관성을 버려야 한다. 금융상품 중 특히 부동산은 과거 숫자를 보여주는 정량적 지표를 해석할 때 미래 변화를 예측하는 정성적인 분석과 접근도 병행되어야 한다.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사회 구조적 변화와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해외 부동산 투자의 미래는 없다. 사람이 가고 싶고,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공간은 부동산 가격이 비싼 곳이 아니다. 기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구성원이 사회적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유럽 부동산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단순한 효율과 기능의 측면보다는 사회적 포용과 조화가 핵심가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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