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분 배정, 전원 동의” vs “형식적 조사, 밀실 배정”
정부 “비수도권·소규모 의대 강화 등 3대 원칙 따라 배정”
의료계 “배정위 회의록 없고, 참석자 신분 안 밝혀…기망행위”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정부는 증원된 의과대학 정원 2000명을 32개 대학에 배정한 근거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비수도권 중심 배정, 소규모 의대 교육역량 강화, 지역의료 및 필수 의료 지원 등 3대 원칙에 따라 정원을 배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배정을 담당했던 배정위원회(배정위) 회의록과 배정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참석자 신원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배정 절차는 ‘요식 행위’에 그쳤다고 비판을 쏟았다.
▶소규모 의대 운영 효율화 고려…지역 의료 수요 충족 여부도 검토=13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증원된 2000명이 각 대학에 배분된 절차에 대한 소명을 서울고법 행정7부에 제출했다.
앞서 교육부는 배정을 앞두고 ▷비수도권 의대 중심 집중 배정 ▷소규모 의과대학 교육역량 강화 필요성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지원 필요성 ▷각 대학의 제출 수요와 교육역량을 주요 배정 원칙으로 제시했는데, 이를 이번 자료에서 한층 상세하게 설명했다.
법원 제출 자료에서 교육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경인 간 의사 수 편차를 조정하기 위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증원된 의대 정원을 약 2 대 8 비율로 배정하고 수도권 중에서도 경인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0명 증원분 가운데 서울 지역 증원분 배정은 없었고, 경인 지역에는 18.1%인 361명이 배정됐다. 비수도권에는 82%가량인 1639명이 배분됐다.
또 교육부는 정원 50명 미만 소규모 의대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소규모 의대의 배정 후 총정원은 80∼120명 범위에서 결정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지역별 거점 대학 정원은 배정 후 150∼200명이 되도록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7개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 정원은 각각 200명으로 늘었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강원대는 132명, 제주대는 100명으로 증원됐다.
교육부는 대학별 정원을 배정할 때 대학의 인적·물적 여건을 파악하고 향후 확충 계획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졸업생의 지역 정주 노력, 권역 책임 의료기관·필수 의료센터 지정 여부 등 지역 의료 개선을 위한 기여도도 들여다봤다고 덧붙였다.
▶배정위 세 차례 개최…전원 참석 외 명단 등 ‘비공개’=교육부는 배정위는 3월 15일과 17일, 18일 세 차례 열렸고, 위원 전원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장소는 정부서울청사, 정부세종청사, 정부서울청사 인근 회의실이라고 공개했다. 다만 배정위 명단 등은 비공개했다.
배정위 1차 회의에서 위원들은 의대 정원 증원 취지와 배정 3대 원칙을 공유했다. 특히 지역 의료 여건 개선을 위해 서울보다는 경인 지역을,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중심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눴다.
2차 회의에서 위원들은 소규모 의대, 지역 거점대 등 학교 유형별 배정 범위를 정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증원분 비율이 약 2대 8로 정해지고 경인권에 집중 배정한다는 방향과 소규모 의대 총정원은 80∼120명, 지역 거점대 총정원은 150∼200명 수준에서 배정한다는 내용이 당시 위원들 간에 공유됐다.
이를 토대로 학교별 배정 규모안을 마련하는 방향에 위원들이 동의했다. 다만 이때까지 배정위는 서울권 소재 대학에 증원분을 배정할지 정하지 못했다.
3차 회의에선 직전 회의에서 결정된 대학별 배정 범위 안과 이를 토대로 마련한 대학별 배정 증원 규모 안에 대해 위원 전원이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의대 졸업생의 서울 진출 비율이 높으므로 증원분을 배정하지 않아도 서울 역시 의료인력이 충원될 것이라는 판단도 이때 나왔다.
▶“배정위 참석자 신분은 공개하기로 했는데…요식 절차”=그러나 의료계는 배정 절차의 핵심이었던 배정위 회의록을 교육부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반발했다. 교육부가 배정위 구성, 위원들의 신분은 민감한 사안이라 보안을 유지한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배정위 회의록과 참석자조차 법원에 제출하지 않는 것은 기망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배정위 첫 회의 후 불과 5일 만에 증원분 배정이라는 중요 결정을, 보안이라는 명분으로 ‘깜깜이’ 속에 진행했다는 비판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대한의학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입학정원 배정 과정은 규정상 대학의 물적, 인적 요건 등을 반영해서 결정해야 함에도, 학교별 조사는 매우 형식적이었고, 배정 과정은 밀실에서 근거 없이 진행됐다”며 “많아야 3시간, 몇십 분 만에 실사를 마친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7개 거점 국립대에 일괄적으로 200명이 배정된 점 역시 배정 절차가 임의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료계의 추측을 부른 대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배정위 명단·구성·소속을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고 바뀌지 않았다”며 “(배정 절차에 대해서는 법원 자료를 통해) 충실히 소명했다”고 말했다.
강정자 교육부 인재양성정책과장도 “국립대에 무조건 200명을 맞춘 것이 아니라, 지역 의료 완결성을 갖춘다는 목적에서 국립대 증원이 맞는다고 봤다”며 “해외 대학 의대 정원이 180∼230명에서 형성됐다는 사례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원은 늦어도 17일까지 정부 의대 증원·배분 처분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어떤 결정이 나오든 반대쪽은 대법원에 재항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결정대로 2025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에 대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심의는 이달 말 완료될 예정이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수험생, 학부모, 대학에서 혼선을 겪고 있어 대교협 심의는 이달 말까지 종료해야 한다”며 “대법원의 별도 요청이 있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추후 상황을 보겠다”고 말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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