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원 컨틴전시 플랜] 예측 가능한 전략물자 관리틀 짜자
수출통제 품목 지정 확대
기업 무역활동 애로 심화
그 중심에 전략물자 논쟁이 있다. 전략물자란 전쟁에 사용될 만한 물건이나 무기, 물질, 기술을 총망라한다. 전략물자로 지정되면 수출통제 대상이 된다.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확대될수록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불리하다. 빨리 잘 만들면 팔리던 시대가 아니다. 누군가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국제조약에서 전략물자로 지정해 버리면 수출길이 막히는 것이다.
전략물자 통제가 무서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주로 국제협약을 통해 전략물자 지정을 주도하는 주체는 미국 등 강대국이다. 전쟁에 쓰이지 못하도록 전략물자를 정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협약을 주도하는 강대국의 편의가 크게 반영될 게 뻔하다. 품목의 모호성은 더욱 심각하다. 전략물자의 본래 개념은 무기 그 자체에 사용되는 '군용물자품목'에 한정된 것이다.
무기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품목마저 전략물자 대상으로 지정되는 게 요즘 흐름이다. 이를 '이중용도품목'이라고 부른다. 군용물자품목을 통제하는 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반면 이중용도 품목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세탁기 내부의 반도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등 무기 부품으로 활용된다면 이중용도품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저사양의 일반용 물품이 전략물자로 지정될지 누가 예측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략물자 품목의 범주가 더욱 넓어질 것이란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앞으로 발전할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영역뿐만 아니라 특정 희토류가 포함된 제품이 언제든 전략물자로 지정될 공산이 높다. 자원은 부족하고 압도적 기술력도 미진한 한국은 전략물자 통제 기조에 매우 취약하다. 시장을 대외에 열어 민첩하게 싸고 질 좋은 제품으로 승부를 걸던 글로벌 개방경제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온 게 우리의 수출전략이었다.
그런데 전략물자 통제가 심화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목이 글로벌 공급망 논의 과정에서 통제대상으로 거론된다. 수출에 사활을 거는 우리 기업들도 노심초사다. 수출한 제품이 갑자기 전략물자로 지정되거나 해외에서 재수출하는 과정에 수출통제 기준을 위반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안보는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경제의 대세다. 전략물자로 지정하거나 빼는 국제협약의 주도권도 사실상 없다. 그렇다고 마냥 전략물자 수출통제 방침을 멍하니 바라보며 수습책만 만들 순 없다. 다행히 국내 유일의 수출통제 담당기관인 전략물자연구원이 오는 8월 무역안보관리원으로 바뀐다. 기존 전략물자 판정과 시스템 운영 외에 무역안보정책 수립 등의 기능이 추가된다. 그야말로 확대 개편이라는 점에서 경제안보 추세에 부합하는 변화다.
그럼에도 최근 전략물자를 둘러싼 경제안보 전쟁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치밀하면서도 복잡한 특성을 지닌다. 더구나 다자간 국제수출통제 체제 아래에서 우리 정부는 모호성이 불가피한 점이 있다. 논의 주도권에 이끌려 'NCND(확인도 부인도 안 함)'가 일상 문법이 됐다. 그러나 모호성이라는 면피의 그늘에 마냥 안주할 순 없다. 안보가 곧 경제가 된 상황에 기업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정부가 방치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전략물자 대응은 '예측 가능성'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 전략물자 접근 태도를 방어적에서 공세적으로 전환해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실행에 옮겨지려면 우리만의 독자적인 전략물자 대응기준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무역기술안보 종합전략' 수립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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