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로 빚어낸 흑백사진… 한 폭의 동양화 담아내다
주상절리는 검게· 파도는 희게 ‘수묵의 맛’
‘수직’ 주상절리·‘수평’ 바다 절묘하게 포착
수직수평의 안정감 바다는 무욕의 안식처
숟가락 더미서 권력 다툼 인간군상 발견
아비규환 속 조화 ‘숟가락 지구’ 조형 탄생
길 끝에서 바다와 인간에 대한 성찰 담아
해무 낀 풍경이 마치 운무산수화 같다. 동양화에서 운무를 즐기는 이유는 기세를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 여백 처리된 운무가 바로 그렇다. 수묵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언뜻 보면 유장한 산맥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사진의 격을 끌어 올리고 있다. 그는 흑백사진에선 수묵의 맛을, 컬러사진에선 수묵담채화의 맛을 진국처럼 끓여낸다. 동양화에서 먹으로 그린 그림에 옅은 채색을 더한 것을 수묵담채화라 한다. 색이 중심이 되는 채색화와 달리 수묵담채화는 먹의 농담 효과를 기본으로 삼고, 여러 색을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적절한 여백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게 된다. 김영재 사진의 맛이다.
그의 사진은 선염기법의 바림효과까지 발현하고 있다. 선염기법은 분무기로 한지를 먼저 적시고 마르기 전에 수묵이나 채색을 가해 표현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붓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은은한 분위기가 나타난다. 안개 낀 산수의 흐릿한 정경이나 우중의 정취, 으스름한 달밤의 풍경을 담아내는 데 제격이다. 먹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는 바림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영재는 빛이 결핍된 환경에서, 예를 들면 흐린 날씨에 빛이 대상에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바림효과를 살려내고 있다. 숙련된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수직수평의 구조는 단순, 심미, 절제의 미로 현대미학의 정수라 할 만하다. 현대 사진은 물론 현대미술에서도 중시한다. 현대추상미술의 대가 피에트 몬드리안도 수직은 생기를, 수평은 평온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수직과 수평의 두 선이 적절한 각도에서 서로 만나면 안정감과 포근함을 선사한다. 김영재 사진에서 바다라는 수평과 주상절리라는 수직이 만나는 지점도 그렇다. 그의 사진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표현의 단계로 깊게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다가 무욕의 안식처로 다가선다.
사진작가이자 조형예술가인 김영재의 개인전이 ‘길 끝에’라는 제목을 내걸고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1010갤러리에서 열린다.
작품 ‘블루’에서는 우주공간 속의 블루 지구를 형상하기 위해 ‘숟가락 지구’를 블루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주변에 놓인 색색의 음료 캔들은 인간의 탐욕이 부른 환경재난을 의미한다.
그가 흑백사진을 선호하는 것은 잊혀가는 것들을 오랫동안 남기고 싶어서다. 색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흑백사진이 작업에 알맞단다. 설령 화면 안에 피사체가 많이 들어가 있어도 눈을 안정시켜 주기 때문에 싫증 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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