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매미겟돈과 동양하루살이
올여름 미국 중서부에는 1조마리의 매미떼가 출몰한다. 13년·17년마다 등장하는 매미 두 종류의 출현 주기가 221년 만에 겹쳤기 때문이다. 크기가 2.5㎝ 남짓한 매미이지만, 1조마리를 일렬로 배치하면 달까지 33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이 엄청난 매미떼의 습격을 두고 매미와 아마겟돈을 합친 ‘매미겟돈’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매미떼 규모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이를 맞이하는 미국 사회의 태도다. 미 언론들은 매미떼가 인체에 무해하다면서, “살게 놔두라”는 전문가의 당부를 반복해 강조한다. 반려견이 마당을 뒤덮은 매미의 사체를 먹으려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고, 너무 많이 먹을 경우에만 배가 아플 수 있으니 주의하면 된다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전한다. 심지어 시카고에서는 매미에게서 영감을 얻은 예술 프로젝트까지 추진되고 있다. 도심 곳곳에 매미 조각품을 전시해 이를 매개로 자연의 변화에 대해 대화해보자는 취지란다.
221년 만에 찾아온 ‘매미겟돈’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한국도 지금 곳곳에서 벌레떼 습격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서는 ‘함박눈’처럼 출현한 동양하루살이떼 때문에 가게들이 영업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충남·경북 등지에서는 사랑벌레가 떼로 출몰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변화로 기온·수온이 상승하면서 개체수가 증가한 탓이다. 대규모 방역으로 없애버릴 수도 없다. 애초 살충제 남용으로 천적이 감소한 것도 사랑벌레 개체수 증가의 원인 중 하나였다. 기후변화는 단기간 내 되돌리기 어려우니 우리는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이 벌레떼와 함께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다행히 동양하루살이와 사랑벌레는 해충이 아니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벌레를 보면 소름이 돋긴 하지만, 몇주 동안의 불편함만 참아내면 이들은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오히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늘어난 날벌레떼가 아니라 급감하고 있는 곤충의 개체수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인한 벌·나비·딱정벌레·잠자리·개미 등의 개체수 감소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카시아꽃 주위를 맴돌던 꿀벌을 올봄에는 한 마리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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