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 넋놓은 韓, 차세대항공 꼴찌 … 잘하는건 디스플레이뿐
美 25개분야 중 17개 최고
AI칩·자율주행·로봇 싹쓸이
한국 2차전지 中에 추격 허용
3D프린팅은 경쟁국 중 최저
"기업에만 투자 맡겨선 한계
R&D도 저출산처럼 지원을"
첨단산업 기술 패권 전쟁에서 한국이 밀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국은 한국이 압도적 우위라고 알려졌던 조선업 분야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 독보적 기술을 보유했다고 할 만한 산업 분야는 이제 미래형 디스플레이와 양극재 소재를 비롯한 일부 2차전지 제조 기술뿐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는 엔비디아가 사실상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은 대만 TSMC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3일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2023년 산업기술수준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25개 기술 분야 중 자율주행차, 지능형 로봇, 차세대 반도체를 비롯해 17개 분야를 휩쓸었다. 기술 범위를 74개로 확장하면 47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281개로 넓히면 167개 분야에서 미국이 1위다.
한국은 25개 중 미래형 디스플레이 1개만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다. 조금 더 확장하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양극재 소재 기술 분야에서 최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적으로는 최고 기술국인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2021년 조사에서 0.8년이었지만 이번 조사(2023년 기준)에서는 0.9년으로 다시 벌어졌다.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벌어진 건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첨단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칩스(CHIPS)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천문학적 보조금을 첨단기술에 쏟아붓고 있는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주춤한 사이 일본은 미국과 기술 격차를 유지했다. 그 바람에 일본과 한국의 상대적 기술 격차는 2021년 0.4년에서 2023년 0.5년으로 벌어졌다. 반면 한국은 0.3년인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더 이상 확대하지 못했다.
산업 기술 분야별로 보면 한국은 미래형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차세대 항공과 3D 프린팅 기술 분야는 조사 대상국(한국,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중 가장 낮았다.
스마트 항공전자 시스템, 친환경 고성능 소형 항공기를 비롯한 차세대 항공 분야 기술은 조사 대상 25개 기술 중 미국과의 격차가 2.9년으로 가장 많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3D 프린팅도 한국은 꼴찌에 이름을 올렸다.
2차전지와 조선 분야는 한국이 지금까지는 최대 강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국이 바짝 뒤쫓고 있어 초격차 전략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차전지 분야 가운데 한국은 리튬이온 전지 분야에서 양극재를 포함한 소재부터 재활용까지 높은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의 파상 공세로 한국의 기술 수준이 98.0이라면 중국은 92.1이었다. 2021년 조사에서 한국은 93.9, 중국은 87.8이었다. 중국과 기술 격차가 6.1년에서 5.9년으로 축소된 것이다.
조선 분야는 이날 산업연구원이 별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한국 조선산업은 저가 수주 물량이 거의 사라지고 고부가가치선 수주가 많아 빅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부터 줄곧 1위를 달려온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이 2023년 중국에 처음 역전당해 2위로 밀려났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그간 기초과학보다 생산과 판매 과정에 치중해온 면이 있었고 이 점이 다른 나라와의 기술 격차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연구개발(R&D) 투자를 저출산 투자와 동일시한다는 각오로 정부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지금 앞서나가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기술 우위를 지키려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전략을 참고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주요국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국가 주도로 반도체 산업 유치전을 펼치는 가운데 기업의 개별 투자에만 의존하는 현행대로라면 금세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문지웅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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