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집중 못 해도 회복된다...경계선 지능 아동 바로 알기
사각지대서 방치돼 늘고 있어
성장기에 잘 이끌어주면
자립적인 삶 꾸릴 수 있어
어딘지 모르게 느리고, 말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집중에 어려움을 겪고…. 묘하게 아이의 발달이 또래와 다르다면 경계선 지능을 의심해볼 수 있다. 경계선 지능은 지적 장애는 아니지만 평균보다 인지 기능 및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보통 미국 정신의학회의 DSM-IV(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에 근거해서 지능검사 지수가 70~85이면 경계선 지능으로 판단하는데, 개정된 DSM 제5판에서는 구체적인 지능 지수를 제시하기보다 “개인의 경계선 지적 기능이 임상적 주의를 요하거나 개인의 처치나 예후에 영향을 줄 때를 지칭하고, 경계선 지적 기능과 경도 지적 장애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지적 기능과 적응 기능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능 지수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전문가의 진단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늘어
하지만 경계선 지능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아이 상태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해 문제를 키우기 쉽다. 장애로 분류되지 않고 사회적 인식이 낮다 보니 각종 교육·복지 혜택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학령기에 진입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학습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교우 관계를 원활하게 맺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곤 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실패하고 뒤처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자신감을 잃고 무력감을 내재화한다는 데 있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경계선 지능은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지능 정규 분포를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3.6%를 경계선 지능인으로 추산할 수 있다. 학령기 학생을 기준으로 삼으면 학급 인원 30명당 3명꼴, 전국 기준 80만여 명으로 적지 않은 수치다.
심지어 경계선 지능 학생은 최근 크게 느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경계선 지능으로 시교육청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 5.4배로 늘었으며, 난독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 역시 7배 넘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면 교육과 관계 맺기 기회가 줄어들면서, 성장에 필요한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해 전반적인 뇌 발달이 지연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에는 적절한 환경만 주어지면 어렵지 않게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며 선천적 요인도 있기 때문에, ‘향상’을 목표로 삼되, ‘완치’의 개념을 들이밀기는 어렵다.
성적보다 학교 적응 지원
경계선 지능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신호를 보낸다. 경계선 지능 전문가인 박찬선 연아혜윰 대표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언어 발달 지연을 꼽으며 “언어 발달이 늦다 보니 소통이 어렵고, 지시 따르기가 되지 않는다. 신체 발달이 느린 경우도 많다. 잘 넘어지고 다친다거나, 소근육을 필요로 하는 오리고 붙이는 행동이 늦을 때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기에 아이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면, 경계선 지능 아이라도 초등학교 저학년 과정은 큰 어려움 없이 따라갈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문제는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부터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복잡한 원리나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능력,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새롭게 습득한 정보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응용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학습 수준이 올라가면 또래 아이들과 격차가 벌어진다. 말의 숨은 의미를 해석하고 소통하는 능력에도 미숙하다 보니, 교우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내용을 반복 설명해주고, 내용을 짧은 호흡으로 쪼개어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그 외에도 쓰기보다는 읽기에 집중하기, 단어보다는 문장으로 길게 말하게 하기 등의 적절한 스킬을 활용하면 좋다. 무엇보다 비난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교육 현실에서 교사가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개별 특성에 맞춘 교육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의 학교생활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박찬선 대표는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학교생활을 즐기면서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성적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며,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도 삶에 필요한 수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선 대표는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친구가 없으면 학교생활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교사가 많다. 하지만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그 시간 동안 아이의 머릿속에는 뭔가가 쌓인다. 절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해도 또래와 시간을 보내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센터에 오는 고등학교 3학년생 경계선 지능인이 있는데, 친한 친구가 없는데도 학교 가는 걸 너무 좋아하고 즐거워한다”라면서 “배제하고 괴롭히지 않는 분위기라면 대화를 주고받고, 친구들이 노는 걸 관찰하면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건 아이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추억이고 배움”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박찬선 대표는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통 능력과 자립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경계선 지능 아이들도 충분히 배우고 기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면서 “물론 공부도 중요하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대학 공부는 중고등학교 과정과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 아이들이 자립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정돈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방 청소를 하거나 주변 정리를 잘하는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 몫을 해내면서 활발하게 일한다. 성장기에 잘 이끌어주면, 경계선 지능인 아이들도 충분히 자립된 인간으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역교육청 지원제도 이용
경계선 지능 아이의 자립은 당사자 및 부모,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크다. 진단부터 맞춤형 치료와 교육까지,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적 장애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과 일반학교 사이에서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2020년에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 관련 조례를 제정한 이후 관련 조례와 지원을 만드는 지자체가 많이 늘었지만, 아직 지자체별로 지원 대상도 지원 범위도 제각각이다.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특화된 교육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인지 능력을 기준으로 학생을 구분하고 분리 교육을 하는 것이 정답인가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다. 결국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섞여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관련 제도와 지원도 최근 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부터 경계선 지능 학생에 대한 진단 및 치료를 지원한다. 올해는 난독·경계선 지능 전문 기관과 업무협약을 2023년 42곳에서 55곳으로 확대해서 지원 폭도 넓혔다. 서울시교육청뿐 아니라 다른 지역 교육청들 역시 경계선 지능 학생을 조기 판별하고 기초 학력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들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경계선지능인평생교육지원센터(02-733-8950)에서도 경계선 지능인을 발굴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과 자립 지원을 제공한다. 종합 검사 지원부터 자립 지원, 진로 탐색, 문해력 향상 교육, 인지 학습, 자조모임, 심리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경계선지능인평생교육지원센터 심은진 평생교육팀장은 “경계선 지능인은 제한된 인지 능력으로 인해 겪는 낮은 학업 성취, 좌절, 잦은 실패로 학습된 무기력이 내재되어 있다. 주변의 거부와 배제로 자존감이 무너진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인지 학습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도 중점적으로 운영한다”며 센터 방향성을 설명했다.
이외에도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개별 학교에서 운영하는 ‘두드림 학교’, 아동복지법상 보호대상아동을 위해 운영되는 아동권리보장원 사업의 ‘경계선지능아동(느린학습자) 사회적응력 향상 지원사업’ 등을 활용해볼 수도 있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지원 확대의 필요성과 함께 가장 시급한 변화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아이들에게는 정상과 비정상, 빠름과 느림이라는 이분법적인 기준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가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계선지능인평생교육지원센터 이교봉 센터장 역시 “경계선 지능인을 차별과 배제, 소외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적절한 개입과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고로 볼 필요가 있다. 경계성 지능인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도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사회 인식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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