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주 어벤져스’ 없으면 공장 안 돌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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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나. 그때는 왜 그렇게 일도 힘들고 여기가 낯설었는지." 정병복(73)씨는 '딸기의 미소'라는 사진 앞을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고향 떠나 일하는 사람들은 다 처지가 똑같아. 나는 1986년에 경주에 와서 자동차 부품 공장을 다녔지." 정씨가 사진에 붙은 설명을 소리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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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나. 그때는 왜 그렇게 일도 힘들고 여기가 낯설었는지.”
정병복(73)씨는 ‘딸기의 미소’라는 사진 앞을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스무살쯤 됐을까? 사진 속에선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동남아시아 여성이 온실 안 딸기밭에서 잔열매를 솎아내다 말고 카메라를 향해 살포시 웃고 있었다. “고향 떠나 일하는 사람들은 다 처지가 똑같아. 나는 1986년에 경주에 와서 자동차 부품 공장을 다녔지.” 정씨가 사진에 붙은 설명을 소리내어 읽었다. “우리 농장의 딸기는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바쁘지만 사람들이 좋아해주어서 기쁩니다.” 사진 속 주인공의 이름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훈 소피아씨였다.
지난 10일 찾은 경주시근로자종합복지관 2층 복도에선 ‘일하는 당신, 아름답습니다’라는 주제로 이주노동자 사진 전시회가 한창이었다. 경주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인데, 촬영된 곳은 딸기 농장, 식품 공장, 식당, 학교, 행사장 등 다양했다. 사진전을 연 경주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없어서는 안 될 이웃이 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을 경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노동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찍은 거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사진전에는 경주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 50여명이 응모했는데, 최우수상은 ‘우리는 경주의 어벤져스’(‘어벤져스’)라는 작품에 돌아갔다.
최우수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경주 현곡면의 쌀떡볶이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옥수수기름과 밀가루 포대 등 식재료가 쌓인 창고 앞에서 작업 도구를 손에 쥐고 영화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처럼 자세를 잡았다. 사진 중앙에서 반죽용 주걱을 한손에 쥐고 미끄럼 타듯 왼 다리를 쭉 뻗은 여성은 필리핀 출신 아걸리아 야베스(39)씨다. 한국 생활 15년째로 경주에서 공장을 다니며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공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아걸리아씨는 “반죽부터 검수까지 안 해본 파트가 없다. 그러니 급한 일 생길 때마다 나를 찾는다. 내가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간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걸리아씨가 일하는 공장은 생산직 115명 가운데 56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이 공장의 이명자 생산부장은 “사진 속 주인공들 모두 핵심 인력들이라 우리가 떠받들어 모신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주노동자 사진도 눈에 띄었다. 성건동 흥무초등학교의 이중언어 교실 풍경이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김 알렉산드라(35)씨.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교사의 말을 통역해주고 있었다. 알렉산드라씨는 전화 통화에서 “2017년 은행에서 통역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학교에서 5년째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은행, 학교 모두 제 역할이 중요하다고 항상 격려해주니 일하는 보람도 크다”고 했다.
인구 24만6천여명인 경주에는 외국인 1만1428명이 산다. 이 가운데 5700여명이 취업비자(E-7, E-9, E-10)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다. 경주시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일하는 우선영 사회복지사는 “(이주노동자가)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동료 노동자요 이웃 주민이란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이주노동자와 경주 시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장소 섭외를 했다”고 말했다. 사진전은 1일 근로자종합복지관을 시작으로 두 차례 전시 장소를 옮겨 진행된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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