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과 저출생부 [유레카]

황보연 기자 2024. 5. 1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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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원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두달여 만인 1961년 7월22일 설립됐다.

정부 주도형 성장제일주의 전략을 이끌었던 경제기획원은 정치·경제 환경의 변화와 함께 33년 만인 1994년에 간판을 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기획원과 같은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지난 9일 밝혔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초대 장관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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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화백

경제기획원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두달여 만인 1961년 7월22일 설립됐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치·사회 불안을 해소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 성장’을 최우선 순위에 올렸다. 가장 큰 임무는 일곱차례에 걸쳐 진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이었다. 각 부처의 정책을 경제개발 계획에 맞도록 조정하고 민간 기업에도 사실상 지침을 제공했다. 이를 위해 재무부로부터 예산 편성권을 가져오고 내무부로부터 통계 기능을 가져오는 한편, 외자의 도입과 배분 권한을 부여받았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한국 특유의 경제 총괄 부서였다.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1차 계획(1961~1965년)에서 7.1%의 높은 목표 성장률을 제시했다. 일본이 1960년에 수립한 ‘국민소득배증계획’(10년 내 국민소득 2배 향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설립 초기에는 조직 변경이 잦고 장관도 자주 교체됐다. 다른 부처 장관들이 전부 군인 출신이다 보니 장악력이 떨어졌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게 되면서 다른 부처에 대한 영향력을 키웠다. 경제기획원이 주도하는 월간 경제동향보고회의에 대통령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힘을 실었다. 청와대와 경제관료들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정부 주도형 성장제일주의 전략을 이끌었던 경제기획원은 정치·경제 환경의 변화와 함께 33년 만인 1994년에 간판을 내렸다. 김영삼 정부가 금융·세제를 담당해온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합쳐진 재정경제원을 만들면서다. ‘작은 정부’를 표방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개발독재의 산물’로 소임을 다했다는 무용론이 대두된 뒤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기획원과 같은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지난 9일 밝혔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초대 장관으로 거론된다. 대통령실에 저출생수석실도 설치된다. 저출생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은 높일 필요가 있지만 구체적 정책 방향 없이 전담 부처 설치만 강조된 점은 아쉽다. 정부는 2005년부터 5년 주기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이들에게 자녀 양육을 지원한다고 해봤자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동안 정부 대응이 청년들의 삶과 어떻게 괴리돼왔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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