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전자파 측정기술 '자주(自主)' 위한 필수 인프라

2024. 5. 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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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전파연구센터장(한국전자파학회 호남지부장)

2차 세계대전 시작과 함께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프랑스를 점령해버린 독일군은 1940년 여름 영국을 침공할 계획을 실행한다. 객관적 전력을 바탕으로 볼 때 영국의 패배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영국본토항공전으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 영국은 끈질기게 저항하며 최종적으로는 승리하게 된다.

이 같은 승전 바탕에는 당시 최첨단 전자파 기술인 레이다 기술이 있었다. 영국은 개전 초에도 레이다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전쟁 중에도 미국과 공동연구를 통해 탐지거리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영국은 적은 수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레이다를 이용해 독일 항공기가 어디서 오는지를 미리 파악해 해당 공역에서 수적인 우위를 점하도록 전투기를 집중배치했다.

이 사례는 비록 20세기 전쟁 얘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 기술이 얼마나 실질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1세기 전자파 기술은 우리 생활 곳곳에 없어서는 안될 인프라가 됐다. 전자파를 사용하는 인류와 전자파를 사용하지 못하는 인류를 비교해보면, 초능력을 가진 새로운 종으로 한 차원 진화한 듯 하다.

우리는 수평선 너머 배나 비행기 위치를 탐지할 수 있고, 콘크리트 벽을 투시해 철근 유무를 확인하거나 도로 밑 씽크홀과 토양에 매설된 지뢰 유무도 탐지할 수 있다. 휴대폰을 이용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지와 대화를 할 수 있고, 인터넷에 접속해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인공위성 전자파 신호를 실시간 수신해 처음 온 길도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고, 전자레인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이용해 음식을 데울 수도 있다. 이 외에도 현대를 사는 우리는 당연한 듯 전자파 기술을 이용하고 있으며, 전자파 기술이 없다면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 것이다.

인류가 전자파를 제대로 알거나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한 세기 정도로, 인류가 최근에 새롭게 획득한 도구이자 능력이다. 현재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인프라 기술이다.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과 같이 21세기 들어 새롭게 나타난 기술도 전자파 기술이 없이는 그 파급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너무도 당연한 듯 사용하는 기술이라 필요에 따라 무한정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자파는 스펙트럼이 유한하고 대역폭이라는 형태로 배분돼야 하는 한정된 자원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더 발전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고, 기존 서비스 품질이 급격히 열화돼 인프라로서의 신뢰성이 급격히 낮아진다.

효율적 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하는 것은 현상 파악 즉, 측정이다. 5세대(5G) 이동통신을 넘어서 6G 시대를 앞두고 있는 현재,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등 서비스를 위해서는 전자파 기기에서 측정해야 하는 항목의 수와 소요 시간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의 측정 기술로 6G 시대를 맞이할 경우, 기기 개발과 디버깅을 위한 측정에 수 일이 걸릴 수 있으며, 스펙트럼 관리를 위한 측정에는 수 주가 걸릴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인프라 기술로서의 전자파 기술, 특히 전자파 특성 측정 기술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아쉽게도 전자파 분야는 전자공학이나 정보통신공학 내에서도 비인기 분야 중 하나며, 측정기술은 전자파 분야에서도 비주류다. 이는 배경기술의 난이도에 따른 진입장벽때문이기도 하지만, 측정과 같은 인프라 기술에 대해 해외 기술선진국에 과의존하는 경향도 원인이다.

5G 시대에 대한민국은 이미 기술 선진국이다. 그러나 필자는 기술선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지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신개념 전자파 기기의 개발과 응용에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 기술은 다른 기술선진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전자파 측정기술과 같은 인프라 기술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김강욱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전파연구센터장(한국전자파학회 호남지부장) mkkim@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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