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1억원 지원' 내세운 권익위 출산 여론조사, 타당한가

허원순 2024. 5. 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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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 방지 국민권익위법’에 따라 설치된 중앙행정기관이다. 주요 업무는 설치 근거 법에 명시된 대로 공무원의 부패 방지와 공공부문의 청렴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기관이 1억 원이라는 큰 지원금을 내세우며 출산 관련 국민 여론조사를 벌였다. 열흘간 1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였다. 기관의 특성상 생뚱맞다는 평가가 나왔다. 저출산·인구 감소는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가 주요 업무로 다루고 있고, 별도로 대통령 직속의 특별위원회까지 구성돼 있다. “부패 방지 기관이 자기 일이나 잘하지, 왜 이런 일에 나서나”라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오죽하면 권익위까지 나섰겠나”라며 저출산은 국가적 문제라는 옹호론도 있다. 23조 원이 소요되는 권익위의 ‘1억 원 출산 여론조사’는 타당한 행정 행위인가.

[찬성] '인구 절벽' 재앙, 범정부 차원의 과제…파격 예산 투입해서라도 풀어야

거꾸로 세계 1위인 한국의 초저출산은 최악의 상황이다. 많은 현대 국가에서, 특히 중진국·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다.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8명에 불과할 지경이 됐다. 학생 부족으로 학교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서울에서도 폐교하는 학교가 나오고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게 되고 국가 소멸론까지 제기된 지 이미 오래다. 몇 년째 국가적으로 큰 논쟁거리가 된 사회적 과제인 국민연금 개혁도 미래 인구 부족에서 비롯됐다. 나아가 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 공적 연금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 지적이 나오지만, 더 무서운 것은 줄어드는 인구로 ‘국가 소멸’까지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특정 부처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인구정책을 기본적으로 복지 문제 정도로 여겨 보건복지부가 주무 부처처럼 돼 있다. 최근 들어 예산의 편성과 조달, 집행 등 모든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일자리와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와 교육정책의 실무를 맡은 교육부가 가세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모든 부처, 정부 전체가 인구 문제에 관한 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조직법 내 공식 위원회인 국민권익위원회가 여론을 조사하고 대안을 내는 게 잘못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렇게 직접 업무 관련이 없는 기관까지 나서야 저출산 대책 예산도 증가하고 국민적 관심도 늘어날 수 있다. 입법권, 정부에 대한 국정 감사권 등으로 행정부 못지않게 막강한 권한을 지닌 국회를 움직이기 위해서도 필요한 정책 행보다. 경제적 지원에 따른 출산 의향을 물은 것이니 설문 내용에 큰 하자도 없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기본 대처 방안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다시 한번 했을 뿐이다.

[반대] 대통령 위원회와 다수 부처 이미 나서…반부패 기관 본연의 역할 집중해야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국가기관이다. 통상적 정책을 담당하는 부(部)가 아니라 위원회 조직인 것도 기관의 특성과 운영 방식 때문이다. 한마디로 권익위는 반부패 총괄 기관이다. 이 기관의 설립 근거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다. 이 법의 제1조(목적, “이 법은 국민권익위원회를 설치하여 고충민원의 처리와 이에 관련된 불합리한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부패의 발생을 예방하며 부패행위를 효율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권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적정성을 확보하며 청렴한 공직 및 사회풍토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에 그 취지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저출산 극복이 아무리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고 해도 권익위가 나서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간섭할 일이 아니다.

저출산이 다수가 걱정하는 현안이라고 하지만 정책을 동원한 해법 찾기는 다른 문제다. 비전문가들까지 나서 중구난방의 검증 안 된 방안을 마구 늘어놓는다고 풀릴 사안이 아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여 년 동안 수백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만 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더구나 지금은 정부 밖에서도 학계와 언론, 심지어 기업계까지 나서 백가쟁명 백화제방으로 국내외의 온갖 이론과 실험까지 다 끌어들이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공이 많은 게 오히려 문제다.

저출산 문제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등 많은 부처가 주요 업무로 상시 접근하고 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정부 조직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전담 기구가 있고, 전직 장관이 부위원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출산 지원금 1억 원에 대해서도 이 위원회는 “저출산 종합 대책 수립 과정에서 전혀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가능하지도 않은 현금 살포를 내세워 혼선을 초래하고 쟁점을 오도한다.

√ 생각하기 - 현금 동원, 저출산 못 풀어…굳이 묻는다면 '재원 대책, 납세 의지' 물어야

정부 기관은 제각기 설치 근거를 담은 법령에 따라 조직·운영된다. 업무도 기관별로 법에 명시돼 있다. 이 역할에 충실한 것이 정부의 직무 이행이고 월권을 안 하는 게 된다. 공직의 직무 이행과 직무 유기를 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월권을 안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는 부패 방지 기관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 국가기관은 자기 직분을 다하면 된다. 그게 민주 국가의 기본이다. 출산 지원금 1억 원이 좋은 제안인지도 의문이다. “1억 원을 주면 아이 낳을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돈은 어디서 나오나. ‘빚쟁이 대한민국 정부’는 그렇게 쓸 예산이 없다. 굳이 묻겠다면 재원 마련을 위해 별도로 세금을 낼 의지가 있는지를 물어야 정상이다. 돈만 쓴다고 출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입증됐다. 어차피 출산하려는 가정까지 현금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선 안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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