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란' 직장인들…"멍때리는 건 사치…화장실도 못 갈 정도"

오정우 기자 2024. 5. 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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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 사회 직장인 "점심도 샌드위치로 포장"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데 멍때릴 여유 없어…"
직장인 10명 중 4명 점심에 다른 활동 여유 없어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12일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서울시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쇼트트랙 곽윤기 선수가 경연을 하고 있다. 2024.05.12.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오정우 기자 =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지만 직장인 김희재(35)씨의 '출근 시계'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전원이 켜진다. 신발을 만드는 스포츠 업계에서 일하는 김씨는 여느 때와 같이 13일도 클럽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점심도 잘 못 먹을 정도예요." 프로젝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의 점심시간 단짝은 '샌드위치'와 '김밥'이다.

질문이 이어지자 김씨는 신호등 앞에서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언제까지 물을 거냐"며 채근했다. 이내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자 그는 잰걸음으로 기자로부터 멀어지는 참이었다.

'멍 때리기 대회를 봤냐'고 묻자 그는 "멍때릴 수 있는 여유는 없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는 "일 하면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데요"라고 반문했다.

정동욱(38)씨의 일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루에 담배 7개비 이상을 피운다는 그는 출근 전 꼭 1개비를 피우고는 점심시간 전까지 단 한 대도 피우지 못한다고 했다. 담배가 유일한 휴식이라는 정씨는 "멍 때리는 건 주말에나 가능한 거고 '사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날(12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10주년을 맞았으나, 바쁜 현대 직장인에게 '멍때리기'는 '남의 집 일'에 가까웠다. 이날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김밥·샌드위치를 포장해 가거나, 커피와 담배로 주린 배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화장도 하지 못해 민낯을 모자로 가린 한 여성은 샌드위치를 받자마자 급하게 횡단보도를 뛰어 가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직장인은 키오스크 앞에서 휴대전화 시계를 쳐다보거나 급한 듯 발을 동동거리기도 했다.

직장인 오모(27)씨는 "바빠서 점심 대신 (든든한) 라테 종류로 갈음할 때가 있다"라며 "당이 든 딸기듬뿍라테를 테이크아웃 해와서 먹곤 한다"고도 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구성은(38)씨도 "점심 시간이 1시간인데 사실상 30분 만에 먹는다"라며 "출근하고 멍 때리는 등 여유를 즐길 수는 없고 빠듯하다"라고 했다.

대낮 직장인들이 몰리는 편의점에서 김밥과 우유는 스테디셀러다. 을지로 일대에서 5개월째 알바했다는 왕심(28)씨는 "직장인들이 점심 때면 김밥과 삼각김밥이나 우유를 사 간다"며 "특유의 고단한 직장인 표정을 지으며 결제한다"고 떠올렸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맑은 날씨를 보인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환승센터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나온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3.05.15. ks@newsis.com


"에휴 돌아가기 싫다."

오후 12시 50분.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주어지는 1시간의 휴게시간인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을 앞두고 직장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공공흡연부스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담배 연기에 희석됐다. 20대 직장인 두 명은 "나인 투 식스(9~6)로 일하지만 사실상 출근 때 멍 때리거나 여유를 가진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주에 2, 3번은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급하게 때울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웠다.

'24시간이 모자란' 직장인들의 '절망 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점심시간 활용 및 활동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 전체 직장인의 10명 중 4명꼴로 점심시간에 식사 외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은 없다고 답했다.

또 절반에 가까운 조사 대상자들은 점심시간에 여유가 생긴다면 잠을 자고 싶다고 답했다.

여기에 밀린 업무 등으로 인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답한 이들도 4명 중 1명 정도로 드러났다.

이같은 상황은 전날 열린 '멍때리기 대회'가 인기몰이를 불러온 이유이기도 하다.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20대 직장인들이 대회를 즐기며 못다 한 여유를 누렸다고 전해졌다.

한편 유튜버 미미미누(28) 등 유명 인사도 대회에 다수 참가한 가운데 쇼트트랙 선수 곽윤기(35)가 대회 3위를 차지했다고 알려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frien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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