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천우희가 진정한 히어로는 아닐까 싶은 이유('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5. 13. 14: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초능력을 소재로 이 드라마가 담으려는 진짜 능력은?

[엔터미디어=정덕현] "나도 주는 대로 받을 뿐이야. 꿈이 보여줬어도 막지 못했을 거고. 니가 과거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미래를 바꿀 수는 없어." 복만흠(고두심)은 예지몽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며느리에게 벌어질 비극을 미리 꿈꾸지 않았냐고 묻는 복귀주(장기용)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의 말대로 이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바꿀 능력은 없다. 무수히 과거로 돌아가 비극을 막으려 했지만 복귀주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복만흠도 벌어질 비극을 막을 예지몽을 선택해서 꾸는 건 아니다.

벌어질 비극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복만흠은 과거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바로 그 무력감을 느꼈고 복귀주는 따르던 소방관 형이 사고현장에서 사망했을 때도 또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그 무력감을 느꼈다. 그 초능력은 그래서 '축복'이 아니라 복씨집안에 대물림되는 '저주'가 된다. "미래를 보고 과거로 가면 뭐 하냐고요? 아무 것도 못 바꾸고 아무도 못 구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복귀주에게 그나마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여겨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복만흠 역시 절망적이다. 차라리 주식이나 복권을 보여주는 걸 감사하게 여길 정도니까.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초능력이라는 판타지를 가져오면서도 뻔한 영웅 서사를 벗어나 흥미로워지는 건 이런 장애 요소들이 더해져 있어서다. 초능력자들이라고 해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초능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조건들이 필요하고, 실제 발현된다고 해도 쉽게 현실을 바꾸는 것까지 가능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울증이 생겨 행복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복귀주나, 불면증이 생겨 예지몽을 꿀 수 없게 된 복만흠, 비만 때문에 날 수 없게 된 복동희(수현)와 독심술을 갖고 있지만 그게 두려워 눈을 두꺼운 안경으로 가리고 스마트폰에 의도적으로 집중하는 복이나(박소이)의 초능력 이야기는 정반대로 우리네 보통 서민들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주는 대로 받을 뿐'이라고 말했던 복만흠의 이야기처럼 이들은 자신들의 초능력이 '운명적인 것'이고 그래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초능력인가. 초능력이란 스스로 능동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하고 그걸 통해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어야 비로소 능력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초능력은 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도다해(천우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도다해를 만나면서 이들이 잃었던 능력을 조금씩 회복하고 심지어 바꿀 수 없었던 현실을 바꿀 수 있게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복귀주는 그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도 누군가를 만나거나 만지거나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도다해만은 그게 가능하다. 또 복만흠은 과거 복귀주의 아내에 대한 꿈을 단 한 번도 꾼 적이 없지만 이상하게 다시 잠잘 수 있게 되면서 도다해에 대한 꿈을 꾼다. 이건 도다해가 이들과 모종의 색다른 관계나 경험, 인연이 있었고 그래서 남다른 마음이 그 능력에 더해졌다는 걸 암시한다. 결국 초능력이 있어도 그게 발휘되는 건 '간절함' 같은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능력은 초능력이 하는 게 아니고 바로 그 간절한 마음이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다해는 이 능력을 잃었거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초능력 가족에게 그 '간절한 마음'을 촉발시키는 존재다. 자꾸만 복귀주의 마음을 건드려 저도 모르게 과거로 회귀하게 만들고 자꾸만 복만흠을 걱정하게 만들어 예지몽을 꾸게 만든다. 복귀주에게 그건 새로운 사랑일 수도 있고 혹은 과거 잃은 아내에 대한 깊은 회한이 만들어낸 새로운 욕망일 수도 있다. 복만흠에게 그건 과거 며느리보다 주식, 복권에만 신경 쓰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의 발현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이들은 도다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픈 절실함이 생겼고 그것이 능력을 회복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저 주는 대로 받는 '운명'이라고 치부했지만, 사실 이들의 능력은 '간절한 마음'을 통해 주체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거라는 걸 도다해가 일깨워주고 있는 것. 물론 도다해는 결혼 사기를 위해 이 집안에 들어왔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여기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가족'처럼 보인다. 자신에게는 결코 없었던 따뜻한 가족을 그는 갖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가 복귀주를 속여 미래에서 온 그가 자신에게 혼인신고서를 내밀었다고 하는 거짓말을 하는 대목은 이 운명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 '선택'을 통해 바뀔 수 있는가를 보여줄 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복귀주는 과거를 다녀온 후에도 도다해의 손을 잡고, 꽃다발을 줬다는 그런 사실들을 모른다. 과거로 간 자신이 그 과거를 바꿔 놓았고 그래서 현재 도다해와의 관계도 바뀌었지만 그건 복귀주에게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다해가 이번에는 거꾸로 가짜 혼인신고서를 내밀며 미래의 복귀주가 나타나 자신에게 그걸 선물로 주고 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과연 이 거짓말은 복귀주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실제로 복귀주가 도다해에게 혼인신고서를 쓰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까. 그건 운명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알고보면 여기 등장하는 초능력 가족들이 능력을 잃은 채 살아가는 건 그걸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처럼 여기고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결국 능력이든 초능력이든 꿈꾸는 건 미래를 바꾸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래를 바꾸는 건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변화를 꿈꾸며 노력할 때다. 도다해라는 사랑이나 가족애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는 바로 그걸 촉발시키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누군가를 구원해주는(미래를 바꾸는) 도다해야말로 진정한 히어로가 아닐까. 비록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