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개의 사람 기억법

터무니없는 상상일 가능성이 99.9%지만, 가끔 수리가 산책 중에 낯선 이를 빤히 쳐다보거나 주춤주춤 따라가면 덜컥 드는 생각이 있다. 혹시 수리의 전 반려인일까? 아니면 엄청 닮았나? 전 반려인과 헤어진 지 6년이 지났는데 수리가 그이를 기억할까?

열세 살 수리는 견생의 절반은 다른 이와 보냈고 절반은 나와 보냈다.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수리가 옛 엄마를 만나면 그이를 따라갈까? 아니면 나를 선택할까?’ 상상하며 허상을 붙들고 혼자 경쟁하고 질투했다. 지난해 겨우 햇수로 전 반려인을 이겨 먹기는 했는데, 이런 나의 유치함을 수리가 알면 웃겠지? 아니, 그보다 수리가 전 반려인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파병 간 지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군인을 온 몸으로 반기는 반려견 영상을 본 적 있다. 반려견은 처음 몇 초간 상대를 못 알아봤지만, 곧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그에게 달려가 몸을 비벼 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사는 한 가족은 2년 전 반려견 ‘코부’를 잃어버린 뒤 슬퍼하다 새로운 반려견을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코부와 똑 닮은 개를 발견했는데, 아무리 봐도 코부였다. 가족은 보호소로 달려갔고, 2년 만의 재회였지만 코부는 곧바로 그들을 알아보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반려인을 잊지 않았던 개도 있기는 했다. 그런 걸 보면 시간이 개의 기억을 지우는 결정적 요인은 아닌 것 같다.

흔히 “개는 현재를 산다”라고 한다. 기억 지속 시간이 수십 초에서 수 분 정도로 매우 짧기도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앞뒤를 연결시키는 능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옛 기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개의 뇌에 각인된 특정 상황이나 냄새, 이미지는 깊숙이 숨어 있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기도 한다. 이런 매개들은 특히 사람과 관련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한 실험에서 자기공명영상(fMIR)으로 개의 뇌를 촬영하면서 개에게 익숙한 냄새(사람과 개)와 낯선 냄새(사람과 개)를 각각 맡게 했는데, 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 ‘미상핵(꼬리핵)’이 ‘익숙한 사람’ 냄새에만 유일하게 반응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미상핵은 긍정 보상에 반응하는 특성을 띤다. 개는 사랑과 칭찬을 주고 함께 놀며 맛있는 간식을 준 반려인의 냄새를 긍정 경험과 연결해 기억 깊숙이 저장해 두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냄새를 다시 맡았을 때, 전생과도 같은 먼 기억을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같이 산 햇수가 답은 아니겠다.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수리를 더 많이 사랑해서 나를 ‘긍정 보상 덩어리’로 수리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언제든 곧바로 소환될 수 있도록. 그래서 언제라도 반드시 내가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야지.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9호(24.5.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