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로드 "1인 개발이 믿기지 않는 최고의 현실성"
잘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간을 순삭시키는 마술과 같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재미에 빠지면 날 새는 줄 모르고 게임을 즐긴다. 대표적인 '악마의 게임' 장르로 불리는 이유다.
이 중에서도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요소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만큼 이것저것 하다보면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간다. 단순히 허허벌판을 개척하고 마을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종 세금 및 민심 관리부터 무역, 군사 등 인프라를 같이 구축해야 한다. 세금은 민심에 영향을 주고, 무역은 마을의 교통과 산업과 연결돼 있다. 각종 인프라의 균형을 유지하며 마을을 번영시켜 나가야 하기에 "이것만 하고 꺼야지"가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시뮬레이션 장르는 타장르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같은 거대 팬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게임이 출시됐으니 바로 '매너로드'라는 게임이다.
인게임 이미지만 봐도 게임 퀄리티가 상당한데다가 짜임새 있는 시스템은 명작 반열에 오른 여타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과 비교해도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엄청난 게임이 1인 개발자 작품이다. 눈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다.
이 같은 기대에 힘입어 매너로드는 스팀 찜 순위 1위를 달성했고, 얼리액세스 출시 후 4월의 아웃라이어가 됐다. 스팀 동시 접속자 수 17만 명 이상을 돌파하며 최다 플레이 게임 6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얼리액세스임을 감안하더라도 열리지 않은 콘텐츠나 불친절한 튜토리얼 등 부족한 점이 결코 없는 게임은 아니다. 그럼에도 매너로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대로 게임의 짜임새가 정말 세밀하게 설계돼 있는 덕분이다.
장르 :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4년 4월 26일
체험 버전 : 얼리 액세스
개발사 : 슬라빅 매직 (Slavic Magic)
플랫폼 : PC, Xbox series X/S
■ 세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ㆍ경제 시스템
매너도르의 최대 강점은 짜임새다. 도시 건설과 경영에 필요한 수많은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 채집 외에도 세금 관리, 군사, 교역, 농사, 물자 관리까지 신경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같은 다양한 요소는 현실성까지 살렸다. 겨울이 되면 농사와 채집을 할 수 없고, 사냥을 너무 많이하면 주변 동물이 멸종한다. 농사는 화전을 하거나, 윤작으로 토지의 비옥도까지 관리해줘야 한다.
교역도 실제 경제 시스템을 가져왔다. 수요와 공급이다. 특정 자원을 자주, 그리고 많이 수입하다보면 가격이 비싸진다. 반대로 특정 자원을 계속 수출하다보면 과잉 공급 상태에 빠져 가격이 점점 떨어진다. 특정 자원을 수출입하기 위해선 교역로도 개척해야 한다.
원활한 마을 관리를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요소 그 어떤 것도 놓치면 안 된다. 비축된 식량이나 연료가 부족하다면 겨울에 주민들은 얼어 죽고, 교역을 하지 못하면 국고가 비게 되어 발전이 더뎌지고 외세의 침략을 받는다.
마을이 커져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구가 증가하는데, 이를 조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매너로드는 벌목, 채집, 사냥, 제빵, 농사 등 관련 건물에 주민을 최소 1명씩 배치해야 기능이 작동한다.
마을이 발전함에 따라 가동할 수 있는 건물이 많아지므로 인구를 계속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인구가 많아져서 그만큼 자원을 소비하면 비축물도 많아진다. 사람이 곧 힘이지만, 덮어놓고 늘리다보면 부족한 물자에 결국 망(亡)테크를 타버리기 일쑤다.
가내수공업이 주를 이루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삼은 만큼 각종 최종 생산품을 각 거주 구역 별로 생산한다는 점도 현실성이 넘치면서도 재밌는 대목이다. 주거 구역의 뒤뜰을 개조해 다양한 물품은 물론 지역 자산까지 생산할 수 있다.
채소를 생산하는 채소밭, 달걀을 얻는 양계장, 가죽을 얻는 염소 헛간 등 1차 산업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한다. 또한 필요한 편의시설과 시장 공급 인프라를 구축하면 업그레이드 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해 맥주, 무기, 방어구 등 최종 생산품까지 얻는다.
생산된 물자는 시장을 만들고 도로를 이어 각 가정으로 공급까지 해야 한다. 따라서 각 건물의 배치도 신경써야 한다. 또한, 거주 구획 업그레이드 조건에는 최소 N개 이상의 종류의 물자를 항목별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작물이나 장비만 생산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생산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 인프라가 힘이며 곧 군사력이다
마을이 발전하면 이제 자원 문제가 플레이어를 괴롭힌다. 교역으로 각종 자원과 식량을 수입할 수 있지만, 주민들이 늘어나면 수입만으로 100% 충당하긴 쉽지 않다. 특히, 농사나 채집이 불가능한 겨울이 위기다.
더 넓은 땅, 그리고 더 많은 자원을 위해 영주인 플레이어는 다른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영주의 영향력, 그리고 강력한 군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
매너로드는 전투를 위한 병사 모집과 편성, 그리고 보급까지 실제 군대의 전반적인 과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병과는 졸병, 창병, 장장병, 궁수 총 네 개다. 그리고 병사 모집을 하기 위해서는 병과에 필요한 필수 장비를 생산해야 한다.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모병이 이뤄진다.
필수 장비는 앞서 언급한 가내 수공업을 거쳐 생산된다. 인프라 구축이 중요한 이유다. 또한, 국고에 비축된 세금을 소비해 다양한 용병을 고용할 수 있다. 마을이 부유해지고, 발전해나가며 더욱 강력한 군대를 갖출 수 있다.
전투 양상은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투로 나뉜다. 소규모 전투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습격해 약탈하는 도적단을 상대로 일어난다. 대규모 전투는 다른 지역 영주 군대와 벌인다. 전투 승리 시 '영향력'을 얻는다. 이 영향력은 다른 지역을 점령할 때 필요한 자원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마을을 습격하는 도적단을 물리치며 영향력과 군대를 키워간다. 영향력과 군사력이 충분해진 뒤 다른 영토를 두고 영주들과 전쟁을 벌이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전투는 체스식으로 부대를 이동시키며 진행된다. 전반적으로 자동이며, 플레이어가 부대 단위로 위치 고수, 후퇴, 자율 사격 등 행동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부대의 진형도 플레이어가 전략적으로 변경 가능하다.
군대의 전투력에 기반해 승패가 결정되지만 전략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형과 진형을 어떻게 구축하냐에 따라 전투력이 밀려도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 가령, 하나의 부대를 샌드위치로 싸먹는 식의 전법이 있다.
■ 훌륭하지만 완성된 게임은 아니다
매너로드는 이처럼 훌륭한 게임성을 갖고 있지만,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 구현된 콘텐츠가 그리 많지 않다. 번역도 엉성하고, 튜토리얼도 불친절해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 스스로 깨닫기도 쉽지 않다.
튜토리얼은 게임에서 알아야 하는 정보가 많은 것에 반해 정말 겉핥기 정도로만 설명해줄 뿐이다. 정확하게는 튜토리얼이 아니라, 간단한 안내 문구에 가깝다. 인프라 구축 등의 설명이 거의 없다보니 인터넷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해결이 어렵다.
기자의 경우 마을을 4번 정도 말아먹으며 시행착오를 겪으니 조금이나마 눈이 트였다.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이 진입장벽이 꽤 높은 것을 생각하면 가볍게 시작한 유저들은 참맛을 느끼기도 전에 지쳐버릴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 역시 얼리액세스 단계에서 잠겨있는 것들이 많다. 도시 레벨이 오를 때마다 찍을 수 있는 특성도 상위 트리는 잠겨있고, 각종 정책과 생산 관련된 요소들도 미구현된 것들이 많다. 정식 출시 때는 다르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선택의 가짓수가 적으니 발전 방향면에서는 꽤 단조로운 양상을 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수십 시간을 즐길 만큼 세밀하게 게임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구매를 추천하는 바이다. 하지만 3만9900원이 다소 아깝게 느껴지는 유저라면 정식 출시까지 기다리는 편이 바람직하다.
1. 중세 유럽을 그대로 가져온듯한 훌륭한 그래픽
2.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ㆍ경제 시스템
3. 중세 전투를 기반으로 한 영토 및 자원 전쟁 구현
1. 불친절한 튜토리얼로 진입장벽이 높음
2. 얼리액세스 단계지만 막혀있는 콘텐츠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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