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진정한 ‘비건 가죽’ | 미생물이 염색까지 해결…완전한 친환경 생물 공정 완성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 2024. 5. 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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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희생시킨다고 가죽 제품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인조가죽도 있지만, 원료가 폴리우레탄이나 폴리염화비닐 같은 석유 제품이라 환경에 좋지 않다. 이제 동물이나 환경 걱정 없이 가죽 제품을 사용할 길이 열렸다. 미생물을 배양해 원하는 색이나 무늬, 형태를 가진 가죽을 생합성하는 방법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4월 9일(현지시각) “톰 엘리스(Tom Ellis)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ICL) 생명공학과 교수 연구진이 박테리아를 배양해 얻은 셀룰로스(섬유소)로 지갑과 신발 같은 가죽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4월 초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실렸다.

특히 박테리아는 이번 배양 과정에서 처음으로 가죽이 될 셀룰로스와 함께 검은 색소(色素)를 동시에 만들었다. 가죽을 스스로 염색한 셈이다. 화학 염색은 패션 업계에서 독성이 강한 공정으로 꼽힌다. 이로써 원료부터 염색까지 완전한 친환경 생물 공정이 완성됐다.

자가 염색으로 환경오염 방지

엘리스 교수 연구진은 ‘코마가타에이박터 라에티쿠스(Komagataeibacter rhaeticus)’ 를 배양해 셀룰로스를 합성했다. 박테리아 셀룰로스는 원하는 모양으로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고 내구성도 기존 가죽과 비슷하다.

최근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비건(vegan) 바람이 불면서 미생물이 합성하는 셀룰로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앞서 패션 업계는 동물성 가죽 대신 인조가죽을 개발했지만, 원료가 폴리우레탄이나 비닐, 나일론수지처럼 석유에서 유래한 물질이어서 역시 환경에 나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업계는 인조가죽의 대안으로 박테리아 셀룰로스로 비건 가죽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이미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색이다. 박테리아 셀룰로스는 연한 갈색을 띤다. 가죽 제품으로 만들려면 염색해야 한다. 염색 과정에는 물이 많이 들어가고 환경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쓴다. 친환경 가죽 제품을 만들면서 또 다른 환경 문제를 초래하는 셈이다. 영국 과학자들은 박테리아 자체에서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연구진은 셀룰로스를 합성하는 미생물에서 티로시나아제(tyrosinase) 유전자를 변형했다. 티로시나아제는 검은 색소 생성을 조절하는 산화효소다. 그러자 박테리아가 셀룰로스와 함께 검은색 유멜라닌(eumelanin) 색소를 합성했다. 이제 셀룰로스는 연한 갈색 대신 검은색을 보였다.

1 박테리아 셀룰로스로 만든 가죽 지갑. 박테리아가 가죽이 될 셀룰로스를 합성하면서 검은 색소를 만들어 염색까지 했다. 사진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2 실리콘밸리의 볼트 스레즈는 2018년 버섯 균사체를 배양해 만든 ‘마일로(Mylo)’라는 명칭의 비건 가죽을 개발했다. 이후 비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출시했지만, 가죽의 내구성을 높이려고 석유 유래 물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생산이 중단됐다. 사진 볼트 스레즈

배양 과정에서 무늬, 로고도 구현 가능

박테리아를 배양하면 필름처럼 얇은 셀룰로스가 생긴다. 연구진은 신발 모양의 맞춤형 용기에 박테리아 셀룰로스 필름을 넣고 14일 동안 밑창을 제외한 신발 윗부분을 성장시켰다. 이후 신발 모양 셀룰로스가 든 용기를 섭씨 30~50도, 염기 조건에서 이틀 동안 부드럽게 흔들어 유멜라닌 색소 생성을 유도했다. 그러자 셀룰로스 내부에서 소재가 염색됐다.

연구진은 미생물 배양으로 완전한 대체 가죽 제품도 완성했다. 신발 공정과 같은 방법으로 박테리아 셀룰로스 필름 두 장을 성장시키고 역시 검은색으로 자가 염색시켰다. 이후 셀룰로스 두 장을 크기에 맞게 자르고 바느질해 검은색 지갑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만든 대체 가죽에 원하는 무늬나 로고까지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먼저 청색광을 받으면 색이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추가했다. 이후 박테리아 배양액에 특정 무늬 형태로 청색광을 비췄다. 그러자 셀룰로스에 해당 무늬가 나타났다. 특정 무늬나 브랜드 로고를 가진 비건 가죽을 생합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라 몰리나리(Sara Molinari) 미국 메릴랜드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생물학이 어떻게 놀라운 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이 아주 적은 지속 가능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박테리아로 만든 직물은 소재 제조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케니스 워커(Ken-neth Walker) 박사는 “우리 기술은 시제품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제품을 만들 만큼 큰 크기로 작동한다”며 “앞으로 다른 모양이나 무늬, 색상까지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 위장 없는 진짜 비건 가죽

박테리아로 만든 가죽은 온실가스 배출 없는 진정한 비건 가죽으로 평가받았다. 기존 가죽은 동물을 희생시킬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에도 일조한다. 가죽을 얻으려고 키우는 가축은 분뇨와 트림, 방귀 등으로 메탄 같은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한다. 사료 생산과정에도 화석연료가 들어가 간접적으로 온실가스가 나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8%가 가축에게서 나온다. 박테리아 배양에는 가축 사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물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박테리아 가죽은 최근 문제가 된 ‘그린워싱(greenwashing·녹색 세탁)’과도 무관하다. 그린워싱은 가짜 친환경 메시지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행위나 기업을 의미한다. 실제로 앞서 시장에서 주목받은 식물성 가죽이 실제로는 석유 제품도 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그린워싱으로 비판받았다.

실리콘밸리의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인 ‘볼트 스레즈(Bolt Threads)’는 2018년 버섯 균사체를 배양해 만든 ‘마일로(Mylo)’라는 명칭의 비건 가죽을 개발했다. 버섯의 기다란 몸통은 균사체라는 관 모양 섬유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2023년 마일로 생산을 포기했다. 비건 가죽을 식물 소재로 만들지만,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폴리우레탄이나 폴리염화비닐 같은 석유 제품도 섞는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생물이 만든 가죽 제품은 대량생산 공정만 갖춰지면 그린워싱 없는 진정한 비건 가죽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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