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는 왜 예산안을 비밀에 부칠까요? [질문+]

구본승 객원연구위원, 김정덕 기자 2024. 5. 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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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정부는 예산안과 예산서 공개
지자체 96.7% 예산안 비공개
예산안 평가할 수 없는 구조
참여예산제 활성화에 걸림돌
예산안 공개 위한 제도 필요

정부는 예산안과 예산서를 모두 공개한다. 이를 토대로 국민들은 정부가 애당초 내놓은 예산안과 국회가 심의ㆍ의결한 예산서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자체는 예산서만 공개할 뿐 예산안은 비밀에 부치고 있다. 관행이 아니다. 법이 그렇다. 문제는 '예산안 비공개'가 재정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산안 공개는 주민참여예산제의 전제 조건이다. 사진은 서울시의회.[사진=뉴시스]

당신은 예산안과 예산서의 차이를 아는가. 예산안은 예산을 사용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을 적은 거다. 예산서는 그 계획을 의회에 제출해서 국회나 지방의회로부터 심의를 받은 거다. 쉽게 말해, 거르고 걸러서 나온 최종 계획이 예산서인 셈이다.

그럼 당신이 정부와 지자체의 살림살이를 평가한다면 예산안과 예산서 중 어떤 걸 봐야 할까. 정답은 '둘 다 봐야 한다'이다. 예산안과 예산서를 비교해봐야 대통령이나 지자체장이 당초에 무엇을 하려 했고, 국회나 의회는 어떤 예산을 어떻게 조정했는지 등을 알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정부는 국민에게 예산안과 예산서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이상한 건 지자체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예산서만 공개할 뿐 예산안은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 지자체에 예산안을 공개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없어서다. 그래서인지 예산안을 보여 달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공개하지 않는 지자체들이 대부분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올해 1월 전국 243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2024년도 예산안(사업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을 정보공개청구했다. 기한은 지방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기 전까지였다. 240개 지방의회에도 상임위원회 심사 전인 예산안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예산안을 제대로 공개한 지자체는 서울특별시, 울산광역시, 울산 중구, 경기 고양시ㆍ과천시, 전남 여수시, 충남 당진시, 인천광역시 등 8곳(3.3%)에 불과했다. 49곳은 약식공개만 했고, 12곳은 설명회나 설문조사 등을 통해 내용을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26곳은 정보가 없다거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 148곳은 공개불가 방침을 전했다.

예산안을 공개한 지방의회도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서울 노원구의회, 경기 여주시의회ㆍ연천군의회, 충남 천안시의회, 부산 금정구의회, 충남도의회 등 7곳(2.9%)에 그쳤다. 29곳은 약식공개로 대체했고, 199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정보부존재 등 5곳이었다.[※참고: 물론 이번 분석은 정보공개청구에 따른 답변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지자체별 담당자의 답변 수준에 따른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인천광역시는 예산안 공개와 더불어 설명회까지 개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예산안을 지방의회에 제출하기 전에 예산안 설명회(공청회, 간담회, 예산 편성 설문조사 등 포함)를 개최했는지 여부도 살펴봤다. 예산안 설명회를 하거나 예산 편성 설문조사를 실시한 지자체는 13곳(설명회 7곳ㆍ설문조사 6곳), 지방의회는 1곳(설명회)으로 총 14곳에 그쳤다.

지자체가 수립한 예산안을 볼 수 없다는 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지자체가 무슨 의도를 갖고, 어떤 예산안을 짰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지방의회가 예산서 편성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취지는 시민이 예산 편성에 직접 참여해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재원 배분의 공정성을 제고한다는 거다. 이 제도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에 따라 의무화했다.

당초엔 시민의 참여폭이 '예산 편성 과정'으로 제한적이었지만, 2018년 법개정을 통해 '예산 전 과정에서의 참여'로 넓어졌다. '예산 과정'이란 예산의 편성과 심의의결, 집행, 결산을 모두 포함하는 걸 의미한다.

이런 주민참여예산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지자체의 예산안 공개가 필수다. 그래야 적극적인 주민참여가 이뤄질 수 있어서다. 예산안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예산안을 지방의회에서 의결하기 전까지 주민들은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결국 지자체가 예산안을 공개하지 않으면 주민참여예산제가 활발하게 작동할 수 없다.

물론 예산안을 공개한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예산안을 파일 형식으로만 공개한 지자체의 경우, 주민이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공개한 파일의 방식도 지자체별로 모두 제각각이었다. 공개 기준이 없어서다. 지자체들이 예산안을 공개하더라도 주민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예산안 설명회를 갖는 지자체도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설명회에서 공개한 예산안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거기서도 공개하지 않은 예산의 내용은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민참여예산제의 효율적인 작동을 위해선 예산안을 전부 공개하고, 설명회까지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론이 아니다. 인천광역시와 충남도의회는 이런 방법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재정민주주의의 손볼 점은 명확하다. 첫째, 주민의 알권리와 재정투명성 실현을 위해 지자체 예산안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는 게 최우선이다. 둘째, 설명회나 토론회, 설문조사 등 주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분과별 부서사업 예산편성 설명회를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의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예산안을 만들거나 심의할 때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어서다.

셋째, 지방의회에서 확정한 예산서를 설명하는 자리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인 주민참여예산제가 작동할 수 있다. 넷째, 예산안을 수정한다면 증감사업 현황과 증감액, 증감사유 등 그 내역도 정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지 10년이 훌쩍 흘렀지만, 재정민주주의는 아직 먼 곳에 있다. 지자체나 지방의회가 예산안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이제 현실과 해결책을 알았으니 실행에 옮기는 것만 남았다. 지자체의 의지 문제란 거다.

구본승 나라살림연구 객원연구위원
1011kbs@naver.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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