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파란만장 20년

서울문화사 2024. 5. 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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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남편 정몽헌 회장 사후 지속된 경영권 분쟁을 끝내고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재계는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서 떠났지만, 실리와 명분은 모두 챙긴 것으로 본다.

‘남편 정몽헌 사후 경영에 나섰지만 고난의 연속,
 현대상선 잃었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결국 지켜내’

생전에 ‘왕회장’으로 불리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다섯째 며느리이자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아내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세계 2위 엘리베이터 회사인 쉰들러홀딩AG(이하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지난 20년 동안 분쟁을 벌였지만 결국 마무리됐다. 현정은 회장 측이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와 손잡고 2대 주주인 쉰들러가 넘보지 못할 지분율 격차를 확보하자 쉰들러는 지난해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계속 팔면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쉰들러가 더 이상 경영권에 위협이 되지 못할 수준까지 지분율을 낮추면서 현 회장의 경영권은 사실상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가정주부였던 현정은 회장은 2003년 남편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현대그룹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경영자로서 평가는 좋지 못했다. 현대상선(현 HMM) 부실 등으로 현대그룹의 사세는 크게 위축됐고, KCC·HD현대중공업 등 현대가와 더불어 쉰들러 등과도 끊임없는 경영권 분쟁에 시달려야 했다.

현 회장은 부실에 빠진 현대상선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현대증권을 매각하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적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에 더 이상 투입할 자금 여력이 없어지면서 현대상선은 결국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마지막 보루이던 현대엘리베이터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지켜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노리던 쉰들러는 현재 인수를 포기하고 지분을 털어내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중심이자 지배 구조의 정점인 회사다.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켜낸 것은 결국 현대그룹을 지킨 셈이다.

현 회장은 지난해 11월 행동주의 펀드 KCGI자산운용의 요구를 받아들여 현대엘리베이터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현대그룹의 총수는 유지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고 있다. 현 회장이 우군으로 끌어들인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 덕분에 현대그룹 지배력은 확고해졌지만 회사의 발전을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차원에서 경영에서 물러난 것이다. 1955년생인 현 회장은 어느덧 69살이 됐다. 자녀들의 경영 승계를 슬슬 준비해야 할 시기다. 남편의 죽음 이후 경영자로서 20년을 포함해 현 회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돌이켜봤다.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에 참석한 현 회장.

기자를 꿈꿨던 호남 거부의 손녀

현정은 회장은 아버지 현영원과 어머니 김문희 사이에서 1955년 1월 26일 태어났다. 현정은 회장의 부모는 딸만 넷을 뒀는데 현 회장은 둘째였다. 통상 현대그룹은 연애결혼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현정은 회장이 현대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집안과 집안이 결정한 정략결혼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집안은 소위 ‘대단했다’.

현정은 회장의 아버지 현영원은 신한해운 회장을 지냈다. 그는 현준호의 아들이다. 현준호는 20세기 초 호남 최대 갑부로 통하던 만석꾼 현기봉의 아들이다. 즉 현정은 회장은 현기봉의 증손녀이자 현준호의 손녀, 현영원의 차녀인 것. 증조할아버지 현기봉은 광주농공은행과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사로 알려진 조선생명을 설립했고, 할아버지 현준호는 호남은행을 설립했다. 호남은행 초대 은행장은 김신석으로 젊은 나이에 조선식산은행(현 KDB산업은행) 두치(총재)를 지내는 등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영재로 꼽혔던 인물이다. 김신석의 딸이 김윤덕으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전 주미 대사)의 어머니다. 삼성가와도 이어지는 셈이다.

어머니 집안 역시 만만치 않다. 어머니 김문희는 전남방직(현 전방) 창업주인 김용주의 장녀이자 정치인 김무성의 누나다. 현정은 회장은 김무성의 외조카인 셈.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맡았던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도 김문희의 남동생 중 하나다. 김문희는 현재 용문학원 명예 이사장이다. 김문희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을 나와 1980년대에 걸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지내는 등 활발한 사회교육 활동을 벌였다.

교육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현정은 회장 역시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높은 학력을 보유하고 있다. 1972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페얼리 디킨슨 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성개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 회장의 원래 꿈은 기자였다고 한다.

현정은 회장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1976년 정몽헌 회장과 결혼했다. 결혼은 시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과 아버지 현영원 회장이 결정했다. 1972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착공 직후 홍콩 선주들을 초청한 자리에 참석한 현영원 회장은 선주들을 설득해 현대중공업이 2척의 유조선을 수주하는 데 도움을 줬으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사돈의 연을 맺기로 했다. 1975년 현영원 회장은 딸 현정은을 대동하고 울산 현대중공업의 선박 명명식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며느릿감으로 낙점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남편 정몽헌은 군 복무 중이었다.

현정은 회장은 결혼 뒤에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학업을 지속하다가 첫딸 지이를 낳은 뒤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 페얼리 디킨슨 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성개발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어머니를 도와 걸스카우트연맹 활동도 했지만 사실상 전업주부로 살았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재벌가 사모님의 인생을 사는 듯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23년 7월 충주 스마트 캠퍼스 제1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1998년 12월 금강산 구룡폭포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왼쪽부터 고 정몽헌 회장, 차녀 정영이, 장녀 정지이, 막내 정영선, 현 회장.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시련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현대그룹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정몽헌 회장이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자살한 것. 후계자인 아들 정영선은 1985년생으로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결국 가정주부였던 현정은 회장은 2003년 10월 21일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이후 경영자로서 현 회장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시숙부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과 시동생인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각각 2003년과 2006년 현대그룹 경영권을 빼앗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경영자로서 현 회장에게 가장 큰 시련은 현대상선이었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매출 70%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였다. 2006~2008년 중국 경제가 고성장하면서 국제 수출입 물품이 급증하자 해운업계에는 배가 부족해졌다. 현대상선은 다급한 나머지 10년 이상 배를 빌리는 장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해운 운임 단가가 급락했고, 고정 지출인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보다 운임 수입이 적어지면서 현대상선은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현 회장으로서는 현대상선을 포기할 수 없었다. 현대상선은 현 회장의 인생이자 정체성이었다. 현대상선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6년 세운 아세아상선이 모태다. 아세아상선은 1983년 현대상선으로 사명을 바꿨고, 1984년 전두환 정권의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로 신한해운이 현대상선에 통합됐다. 신한해운은 아버지 현영원 회장이 설립한 해운사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배려로 현영원 회장은 합병 이후 현대상선 회장에 취임했고, 1995년까지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현대상선은 아버지가 키운 회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현대상선을 지키는 것은 현씨 가문을 지키는 것이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2013년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을 팔아가면서 현대상선을 지원했다. 현 회장은 사재 300억원을 출연했다. 하지만 결국 늘어나는 적자에 버티지 못했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산하로 넘어갔고, 2020년 3월 사명을 HMM으로 바꿨다.

대북 사업 역시 안타깝게도 이어가지 못했다. 대북 사업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이었고, 1998년 정 명예회장이 북한으로 건너갈 당시 정몽헌 회장이 동반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그녀로서는 대북 사업이 남편의 유지였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큰 인기를 끌며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현 회장은 남편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이후 중단된 상태다. 대북 사업을 담당하던 현대아산은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실패에 현대그룹은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상태다. 하지만 그녀는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리던 쉰들러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만은 지켜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매년 1,00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남기는 알짜 회사로 현대그룹의 마지막 버팀목이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인수를 포기하고 지분을 줄여나가고 있다. 현정은 회장 측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7.8%를 가지고 있고, 쉰들러의 지분율은 3월 말 10.88% 수준에 그친다. 더 이상의 경영권 분쟁은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가량을 확보한 KCGI자산운용은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 사퇴와 배당 확대 등을 요구했는데, 지난해 11월 현 회장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도 현대그룹 지배력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3월 28일 2023 사업연도 주주총회를 열고 조재천 현대엘리베이터 대표를 포함한 재선임 후보 3명과 한희원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의 이사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모두 현정은 회장 측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현대그룹 후계자는 누구?

이제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사실상 안정됐다. 현재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그룹의 중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 사업 전문가인 조재천 대표가 이끌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남은 목표는 이제 자녀들의 경영 승계다.

현 회장은 자녀로 정지이(장녀)·영이(차녀)·영선(장남)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는 197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2004년 현대상선에 입사했다. 정지이 전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는 등 어머니의 비서 역할을 하며 옆에서 도왔다. 현재 임당장학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차녀 정영이 현대무벡스 부장은 1984년생으로 상명여고 1학년 때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나 보스턴 인근 사립고인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장남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는 1985년생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결혼했다.

취재 : 육종심(경제 전문 프리랜서) | 사진 : 서울문화사 DB, 일요신문·현대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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