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회의로 오해 풀고 공통 이익 찾아야[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2024. 5. 13. 0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한일 양국 美 대중 포위 전략 지원해왔다고 판단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전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차장).

(서울=뉴스1)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 지난 4월 말 필리핀 막탄섬에서 본 낙조(落照)는 흐드러지게 아름다웠다. 해가 넘어간 막탄섬 하늘에는 북극성이 푸른빛을 흩뿌렸다. 필리핀인의 선조 오스트로네시아인은 기원전 3000년 경 양쯔강 하구에서 출발해 북극성을 길잡이로 대만 해협과 바시 해협을 건너 오늘날의 필리핀 루손섬에 도착했다. 그들 중 일부는 대만 북동쪽 미야코섬과 오키나와섬 사이에 위치한 미야코 해협을 건너 규슈까지 진출했다. 오스트로네시아인이 평화리에 건넜던 대만 해협과 바시 해협, 미야코 해협은 오늘날 대만과 필리핀, 중국, 일본은 물론, 한국의 안보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무역의 99.7%가 바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바닷길이 15일 이상 막히면 제조업과 건설업 포함 한국 경제가 마비된다. 100일 이상 막히면 경제가 붕괴한다. 한국을 오가는 화물의 약 40%가 대만 해협을 통과한다.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 인도양 → 말래카 해협 → 남중국해 → 대만 해협 → 동중국해를 거쳐 부산항, 울산항, 인천항, 평택항에 도착, 하역된다. 이 항로가 최단거리다. 한국에게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대만 해협에 안보 위기가 발생하면 미국은 주한 미군 병력은 물론, 오산·군산 공군기지와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우리 해군 당국에 의하면 대만 해협 유사시 한국은 하루 약 5000억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을 것이라 한다. 전쟁으로 비화하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3%가 증발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13.5%)이나 중국(16.7%)이 입게 될 피해보다 훨씬 더 크다.

대만 남부와 루손섬의 부속도서 바탄제도 사이의 바시 해협은 서태평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주요 해로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유조선이 바시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바시 해협은 국제 통신에도 중요하다. 데이터와 전화 트래픽을 전달하는 해저 통신 광케이블 대부분이 바시 해협을 통과한다. 바시 해협은 괌에서 출발한 미국 해·공군이 대만 해협으로 향할 때의 직항로이기도 하다. 중국에게도 대만 포위와 서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위한 최단 항로다. 지난해 4월 미국과 필리핀은 바시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바탄제도에 속한 바스코섬 일대에서 '발리카탄 2023'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합동군사훈련 기간 중 바스코섬에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스팅어 방공미사일 등을 배치했다. 미국은 바스코섬 일대의 군사력을 증강해 바시 해협 방어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필리핀 군인들이 8일 루손섬 북서부 라오아그 해변 사구에서 열린 미국군과의 합동군사 발리카탄 훈련중 차륜형 155㎜ 자주포 ATMOS를 발사하고 있다. 2024.05.08 ⓒ AFP=뉴스1 ⓒ News1 정지윤기자

2000년대 이후 중국의 해양굴기(海洋崛起)와 함께 중국과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 간 남중국해 관할권을 에워싼 분쟁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해·공군력 증강에 위협을 느낀 필리핀은 2014년 미국과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체결해 미군 순환배치를 허용했다. 미군은 필리핀 소재 기존 5개 기지와 함께 4개 기지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필리핀은 최근 인도로부터, 인도가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사거리 290㎞의 초음속 브라모스 지대함 미사일을 도입했다. 한국으로부터는 군함과 미사일 등을 사들였다. 지난 4월 말 미국과 필리핀은 사상 최초로 분쟁 지역 남중국해에서 '발리카탄 2024'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자위대가 옵서버로 참가했다. 필리핀군은 한국산 군함과 미사일을 선보였다.

지난 4월 초 워싱턴에서 개최된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안보 파트너십) 국방장관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과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제공하는 필러 1이 아닌) '필러 2' 협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러 2는 △양자 기술 △인공지능(AI)과 자율무기 △사이버 기술 △극초음속과 대(對)극초음속 등 8개 첨단 분야의 군사역량을 공동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오커스가 미·영·호가 아닌 제3국 참가 수용 의사를 표명한 것은 2021년 출범 이래 처음이다. 오커스는 필러 2에 한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등도 추가로 참가시킬 의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오커스 필러 2에 참가하기로 결정할 경우 이는 미국이 짜놓은 대(對)중국 격자형 안보체제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근다는 의미다. 미국은 중국 포위를 위해 지금까지는 양자동맹 중심 '허브 앤 스포크(Hub&Spoke: 중심축과 바퀴살)' 전략을 추구해 왔지만, △쿼드(QUAD, 미·일·인·호)와 △오커스 △한·미·일 △미·일·필 등 다자 중심 격자형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 중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대리자로 내세우려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 남쪽에 자리한 '한국이라는 배'는 현재 미국의 구심력과 중국의 압박이 교차하는 암초 가득한 캄캄한 바다를 뒤뚱거리며 항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는 5월 26~27일 서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3국 정상회의가 중단된 지난 4년 6개월 동안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계속 확대해 왔다. 반대로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등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 전략을 지원해 왔다고 생각한다. 상호 긴밀한 대화를 통해 한·중·일 3국이 오해는 풀고 공통이익은 찾기 바란다.

ⓒ News1 DB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