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시호, 민사 패소 직후 “오빠랑 전화해봐야지”
국정농단 사건 이후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그 결과들이 나왔는데, 판단이 각기 달랐다. 민사 법원은 장씨 패소로 판결한 반면, 검찰은 민사소송과 같은 내용으로 제기된 형사 고소 사건에 대해 재판에 넘길 수 없다고 결정했다.
민사 법원 판단과 형사 고소에 대한 검찰 처분이 늘 같을 순 없다. 문제는 장시호씨가 민사소송 패소 당일 현직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형사 사건에 대해 상의하고 조언을 받은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장씨와 통화한 현직 검사는 김영철 대검찰청 반부패부 1과장이다. 장씨와 김영철 검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와 검사 사이로 만났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김영철 검사가 장시호씨와 부적절한 사적 관계를 맺고 뒷거래를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김 검사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5월8일 입장문을 내고 “장시호씨를 외부에서 만난 사실이 전혀 없고, 사건과 무관한 이유로 연락한 적도 전혀 없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그 어떤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혔다. 해당 의혹 보도 매체와 발언자 등에 대한 법적 대응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장씨에게 걸린 민·형사 사건에 관여했다고 보이는 정황에 대해 묻는 〈시사IN〉 질의에, 김영철 검사는 5월10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특검 수사 이후 장시호씨가 연락을 해오면 받았고, 원론적인 법적 조언을 해준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법인은 2018년 10월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장시호씨를 형사 고소한 데 이어 2019년 3월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삼성 등 대기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으로 뒷돈을 받는 창구로 사용했다. 장시호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무총장을 맡아 실질적인 운영을 총괄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민사소송과 형사 고소를 통해, 장시호씨가 최순실과 짜고 법인 자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센터 자금을 관리하고 있던 장시호씨가 2015년 설립자금 5000만원을 최순실씨가 인출할 수 있도록 법인 통장과 도장을 건네줬고, 실제로 최순실씨가 같은 해 7월 돈을 빼돌려 손해를 입었다는 내용이다. 센터는 또 최순실씨가 리스로 사용해오던 승합차(카니발)를 법인 명의로 승계했는데, 장시호씨가 이를 개인용도로 쓰다가 제3자에게 마음대로 매도해 피해(승합차 승계·매입 비용 2600만여원)를 입혔다고도 주장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장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2021년 1월20일 센터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센터를 설립한 최순실씨가 장시호씨에게 법인 운영을 위임한 점 △이후 장시호씨가 직원 채용과 자금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등 법인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왔던 점 △최순실씨가 센터 설립자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통장과 도장을 건넨 사실 등을 종합해, 장시호씨가 “최순실씨와 공동불법행위(횡령)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승합차 승계·매입 비용은 금융기관 등에 상환된 사실이 확인됐고 장시호씨가 돈을 빼돌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장씨는 이후 고등법원에 항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되면서 2022년 11월10일 1심 법원 판단이 확정됐다.
한편 검찰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장시호씨를 상대로 고소한 형사 사건에 대해 2021년 2월24일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센터가 장씨를 고소한 지 2년6개월여 만에 나온 결과였다.
‘공소권 없음’ 처분은 검찰이 재판을 청구하지 않는 불기소 처분 유형 중 하나다.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경우 등 소송 요건이 모자라거나 면책되는 경우에 내려지는 결정이다. ‘공소권 없음‘이 ’혐의 없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혐의 내용으로 제기된 민사소송과 형사 고소 사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늘 같은 건 아니다. 민사 법원 판단과 수사기관 처분이 엇갈리는 일이 이례적이지도 않다. 다만, 이번 장시호씨 사건에서는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민사소송 선고와 검찰의 형사 고소 처분 사이 장씨가 한 지인과 나눈 대화이다.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자기가 물어봐 준대”
장씨호씨가 지인 A씨와 2020년 6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나눈 전화 통화 녹음파일 1300여 건 일부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대화가 나온다. 최근 장시호씨와 김영철 검사가 사적 관계를 맺고 뒷거래를 해왔다는 의혹도 이 녹음파일에서 불거졌다. 김 검사는 그 의혹에 대해 5월8일 ‘전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녹음파일 내용 가운데에서는 장시호씨가 민사 패소 직후 김영철 검사와 통화를 하고 형사 사건에 대해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 전화 통화 한 달 뒤, 검찰의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나왔다.
〈시사IN〉이 장시호씨 지인 A씨로부터 입수한 녹음파일 내용 가운데,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건과 관련한 전화 통화는 2021년 1월20일 오후 3시26분에 이뤄졌다. 민사 법원이 장씨에 대해 일부 패소 판결한 당일 오후다. 대화 내용을 종합하면, 당시 장씨는 민사소송과 함께 제기된 형사 고소 사건에 대해 자신의 변호인과 상담을 한 직후 A씨와 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장씨: 얘(변호인) 말로는 형사 사건에서 형사 종결을 시켜줬으면, 민사가 선고 기일이 안 잡혔을 텐데 그때 김스타(김영철 검사)가 이재용 재판한다고 정신없어서 딴 데로, 딴 부서로 넘겨가지고 형사 사건을 들고 있는 바람에 민사가 선고 난 거 아니냐고. 민사에서 이렇게 나든 형사랑 민사는 틀린 거기 때문에 신경 쓰지 말라는데…. 얘(변호인)는 나한테 ‘형사는 네가 종결로 한다면서?’ 이런 취지야.
A씨: 그때 너 김스타(김영철 검사) 얘기 나한테 얘기했던 그거지? 그럼 그건 아직 지금 중앙(중앙지검)이 갖고 있는 거잖아. 통화해 봐야 되겠네.
장씨: 오빠(김영철 검사)랑 전화해봐야지. 오빠한테 자꾸 그런 부탁하는 것도 싫어. 중앙에 한 번 불려간 다음에 그 검사한테 종결시켜달라고 얘기하는 것도, 거기서 김스타(김영철 검사) 불러서 그냥 종결시켜달라고 얘기하는 것도 나을 것 같기도 해. 검찰에서 부르면 가는 날 오빠(김 검사)한테 전화해서 ‘오빠 어디로 가는데’ 이렇게, 이렇게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
이후 장시호씨는 실제로 김영철 검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를 한다. 위의 대화 3시간 이후인 2021년 1월20일 오후 6시39분 장씨가 A씨와 나눈 전화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씨: 민사랑 형사랑 별개래, 김스타(김영철 검사)가. 민사에서 나오는 사건은 사건이고, 형사는 형사 처벌을 또 따로 받아야 되는.
A씨: 어쨌건 김스타랑 통화했다는 거지? 그럼 오케이네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장씨: 근데 그거(동계스포츠영재센터 고발 사건) 자기(김영철 검사)가 안 갖고 있어서. 요즘엔 다른 검사들한테 어떻게 해라 지시하는 거조차 청탁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거야. 맞지. 그런데 그 검사한테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자기가 물어봐 준대.
일주일 뒤인 2021년 1월27일 오후 10시34분, 장시호씨는 A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형사 고소 사건에 대해 또다시 언급한다. 장씨가 자신의 변호인과 수사기관 출석 조사와 관련한 상담을 마친 이후 나눈 대화로 보인다.
장씨: 내가 먼저 혼자 다녀온 다음에, 이게 사건이 커질 것 같으면 ‘제가 오늘 심신이 미약해서 다음에 받겠습니다’ 그러고, 변호사님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그 형사 사건을 어차피 김영철 검사님이 얘기 들으면 분위기상 오실지 안 오실지 모르겠지만 알고는 계시다고. 근데 또 거기 한참 밑에 검사한테 또 오시기도 그러실 것 같아서. 나중에 그런 게 또 있잖아. 어차피 오빠(김영철 검사)가 내가 가는 거 아니까. 내가 언제 간다 그러면 연락이 안 되는 사람도 아니고.
‘윤석열 사단’ 검사의 피의자 법률 자문
장씨와 A씨 사이 전화 통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김영철 검사는 2016년 부산지검 재직 시절 국정농단 특검팀에 파견됐다. 윤석열 검사가 팀장을 맡은 4팀에 배치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등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 뇌물 사건 수사를 맡았다. 장 씨는 김 검사가 수사한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이었다.
김영철 검사는 특검 활동을 마친 뒤 부산지검 부부장검사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윤석열 사단’ 검사로 주목받았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2019년),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2020년)을 지낸 뒤 2020년 9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로 자리를 옮겼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사건 등을 맡았다. 지난해 9월부터는 차장검사급인 대검 반부패1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씨와 A씨의 전화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 김 검사는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검찰이 장씨에 대해 내린 ‘공소권 없음’ 처분의 근거는 포괄일죄(여러 행위가 포괄적으로 하나의 죄를 이루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장씨가 최씨와 함께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제기한 설립자금 횡령 의혹을 국정농단 특검이 기소한 센터 자금 횡령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 이뤄진 유사한 범죄, 즉 연속범행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장시호씨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재판에서,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 등을 상대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금 총 18억2000만원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았다. 센터 자금 3억여 원을 자신의 차명 회사로 빼돌리고, 국가보조금 2억4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도 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장씨는 2020년 7월까지 특검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징역 1년5개월이 확정됐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형사 고소를 담당한 검찰 수사팀은 장시호씨가 이미 특검에서 기소한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으니, 같은 혐의로 또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처분의 시점이 공교로운 건 사실이다. 처분이 나온 때는 형사 고소 2년 6개월 만인 2021년 2월24일이었다. 장씨가 A씨에게 ‘김스타(김영철 검사) 불러서 (형사 사건) 종결시켜달라고 얘기하는 게 낫겠다’라고 이야기한 날로부터 한 달 뒤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의심을 살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시점상 공교로움에 대해 김영철 대검찰청 반부패1과장은 〈시사IN〉에 “충분히 질문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김 검사는 장시호씨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법적으로 조언을 해준 사실은 있다고 했다. 김 검사는 5월10일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특검 수사 이후 장시호씨가 연락을 해오면 받았던 것은 맞다. 원론적인 법적 조언을 해준 것도 맞다. 다만 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관련한 사건이었는지, 어떤 내용의 조언을 해줬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건을 담당해왔고 시간도 많이 지나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장시호씨가 연락해 물어온 내용이 당시에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 검사의 설명은 장시호씨 녹취파일로 여러 의혹이 불거진 이후 5월8일 배포한 입장문 내용과 일부 다르다. 김 검사는 입장문에서 “장시호씨를 외부에서 만난 사실이 전혀 없고, 사건과 무관한 이유로 연락한 적도 전혀 없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그 어떤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갑자기 매몰차게 대할 수 없었다”
다만 김 검사는 〈시사IN〉에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특검 수사 당시 장시호씨는 중요한 참고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회장 등 중요 사건 관계자들이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과정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당시 저뿐만 아니라 특검팀 관계자들 모두가 장시호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검 수사가 종료됐다고 해서 갑자기 매몰차게 대할 수 없었다.”
그는 이어 “장시호씨 사건(동계스포츠영재센터)은 제 사건도 아니었고, (사건을 맡은) 다른 후배 검사들도 대쪽 같아서 부탁은커녕 말도 꺼낼 수 없다. 무엇보다 검찰에서 청탁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씨는 과거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관계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김종 전 문체부 차관(최순실씨와 공모해 대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한 혐의 등으로 유죄 확정)과 각별하다고 말해왔다는 취지로 증언하기도 했다. 이번 녹음파일에 나온 내용들도 지인과 잡담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시호씨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장씨는 최근 인터넷매체 〈KPI뉴스〉에 “김영철 검사와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지만, 연락한 것은 사실이다. 법적으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A씨와의 대화에서) 과시하고 싶어 거짓말한 것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검사와 관련된 의혹을 언급하며 검찰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월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검사가 국정농단 특검 수사 시 장씨에게 질문지와 답변 내용을 주고 외우게 했다는) 장씨-A씨 간 통화 녹취 파일 내용을 두고 “검사인지 깡패인지 알 수가 없다. 모해위증교사죄로 징역 10년짜리 중범죄 아니냐. 없는 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런 해괴한 자만심 가득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5월8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검찰의 추악한 민낯이 또 폭로되었다. 장시호의 ‘오빠’ 김영철 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고 탄핵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5월10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김영철 대검찰청 반부패1과장을 직권남용 및 모해위증교사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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