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기자가 직업병 대통령에게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5. 13.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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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이라는 것을 무시 못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가진 직업병에 관해서도 지난 2년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기자가 모든 일을 '취재'하듯이 하다가 욕을 먹은 것처럼, 검사 출신 윤 대통령도 국정을 '수사'하듯 끌고 가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요.

100여 분간 이어진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영상을 보니 대통령은 이런 민심에 대해 엉뚱한 곳에 혐의점을 두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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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오른쪽). ⓒ연합뉴스

직업병이라는 것을 무시 못합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것저것 물으면 지인은 타박합니다. “야, 취재 좀 하지 마.”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나 지인의 오랜 고민거리를 듣게 되면 일단 묻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힘듭니다. “왜?” “어디서?” “정확히 언제?” “누가 그랬다고?”…. 나름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 ‘진단’과 ‘솔루션’을 건넸다가 (그때 저도 모르게) 척을 지게 된 인연도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거 ‘일침병’이라고, 너와 같은 직업군 사람들에겐 익숙한 소통 방식인지 몰라도 타 직군 사람들은 되게 거슬릴 수 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가진 직업병에 관해서도 지난 2년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기자가 모든 일을 ‘취재’하듯이 하다가 욕을 먹은 것처럼, 검사 출신 윤 대통령도 국정을 ‘수사’하듯 끌고 가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과 언론인, 일반 국민을 피고인석에 세워 신문하듯(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옥죄었고, ‘상명하복’을 떠받드는 검찰 조직 문화를 그대로 여당 내부에도 적용해 ‘반윤’을 찍어 누르고, 야당과의 조율이나 타협이 필요한 판단들을 공소장 속에 내려놓은 결론처럼 혼자서 확정 지어 버렸습니다.

기자들이 기자들끼리만 일하고 놀다가 ‘취재병’과 ‘일침병’이 악화되는 것처럼 검사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윤석열 정부에서 ‘검사 돌려막기 인사’로 인한 폐해가 제기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취임 2주년을 맞아 쇄신을 한다며 내놓은 조치가 ‘민정수석실 부활’입니다. 윤 대통령이 2년 전 인수위 출근 첫날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며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다”라며 ‘잔재 청산’을 공언한 그 민정수석실 말입니다. 윤 대통령은 첫 민정수석 자리에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인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습니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신설의 명분으로 ‘민심 청취’를 내세웠습니다. 맞습니다. 그동안 들어야 할 민심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얼마 전 또 전세 사기 피해자가 사망했습니다. “살려달라 애원해도 들어주는 곳 하나 없고 저는 어느 나라에 사는 건지…”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비슷한 사망 사례가 벌써 여덟 번째입니다. 봄날부터 퍼붓는 폭우 등 이상기후에 농민들 마음도 타들어가고 장바구니를 채우는 서민들 손도 덜덜 떨립니다. 100여 분간 이어진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영상을 보니 대통령은 이런 민심에 대해 엉뚱한 곳에 혐의점을 두고 있더군요. “지난 정부 때 양도소득세 중과세 등 부동산 자산에 징벌적 과세를 매겨서” 그 여파로 전세 사기와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고요. 또 “관세를 물리지 않는 방향으로 해서 좀 더 싸게 수입 농수산물을 확보하면 장바구니 물가를 잡을 수 있다”라고요.

그래서 또 ‘기자’ 직업병을 가진 저는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민정수석실이 없어서 민심을 못 들었던 걸까요. 민정수석실이 생기면 과연 없던 귀, 닫힌 귀, 쪼그라든 귀가 생기고 열리고 펴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혹시 민정수석실 신설에 ‘민심 청취’ 말고 다른 숨겨진 목적이 있는 걸까요. 자꾸 물어서 불편하시다면 죄송합니다만, 그게 제 직업입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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