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200년]③ 여수 대륵도에 드러난 공룡 뼈…국내 첫 공룡 발굴 조사 시작될까
국내 최초로 공룡 화석 발굴 조사 기대
“한국은 아직 공룡 뼈 화석에 대한 학술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한국 고유종으로 인정 받은 공룡도 단 두 종(種)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 공룡이 많이 살지 않았다는 오해도 있으나, 사실이 아닙니다. 한국은 과거 수많은 공룡이 살았을 가능성이 큰 지역입니다.”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작은 섬 대륵도로 가는 길, 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공룡학자인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한국 고유 공룡 연구에 대해 묻자 이렇게 의외의 답을 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과학기술 강국이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0위권에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공룡 뼈 화석에 대한 학술조사가 이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백악기 지층에서 드러난 공룡 뼈 화석
대륵도는 과거 주민 몇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로 변했다. 이따금 인근 섬에 사는 주민들이 찾을 뿐 여객선도 닿지 않는다. 이날 대륵도를 가기 위해 마을 주민의 배를 빌려 탔다. 배에는 이 교수와 조사에 동행한 문화재청 관계자가 함께 탔다.
이 교수는 “10여년 전쯤 국내 공룡 화석 산지를 찾기 위해 남해안 일대를 모두 샅샅이 뒤졌다”며 “대륵도는 당시 발견한 화석 산지 중 한 곳으로 가장 많은 공룡 뼈 화석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약 20분을 달린 끝에 도착한 대륵도의 한 해변에는 과거 지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케이크를 자른 듯 색색으로 구분된 지층은 여러 시기의 흔적이 쌓여 있음을 한 눈에 보여줬다. 이 교수는 그중 한 지층을 가리키며 ‘하산동층’이라고 설명했다. 하산동층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2000만년 전 중생대 전기 백악기에 쌓였던 지층을 말한다. 당시는 한반도에는 인간 대신 공룡이 살고 있었다.
대륵도에 도착하자 이 교수와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하산동층에서 공룡 뼈를 찾기 시작했다. 회색을 띠는 지층에 마치 검은 콩처럼 박혀 있는 공룡 뼈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교수는 “공룡 뼈는 땅 속에서 큰 압력과 높은 열을 받으며 마치 도자기가 구워지듯 까맣게 변한다”고 설명했다.
1시간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찾은 공룡 뼈 화석은 10여개에 달했다. 이날 조사팀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머리뼈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했다. 국내에서 공룡의 머리뼈가 발견됐다는 학계의 공식적인 보고는 아직 없다. 이날은 지층 바깥으로 드러난 화석에 대한 조사만 이뤄졌다.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 지층 내부에 숨겨져 있는 화석들이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
앞서 몽골에서도 작은 뼈 조각 하나를 발견한 이후 조사를 시작해 온전한 형태로 공룡 화석들을 발견하는 일이 흔한 만큼 대륵도에도 공룡 화석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날 발견한 공룡 뼈는 단단한 암석에 박혀 있어 화석의 전체 형태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화석의 일부만 지층 밖으로 드러나 실제 공룡의 뼈인지 알려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이날 발견한 화석의 주인공은 공룡 뼈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산동층이 만들어진 백악기에는 대형 포유류가 없어 공룡 뼈와 포유류 뼈는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며 “비슷한 시기에 하늘을 날던 익룡의 뼈도 크기가 작고 강도가 약해 화석의 형태를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륵도에서 공룡 뼈 화석이 발견된 가능성이 커진 만큼 국내 매장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도 국내 첫 학술 조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화재청은 이달 17일 ‘국가유산청’으로 재출범하면서 자연유산에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여성희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장은 “실제 공룡 뼈 화석 산지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내부적으로 검토해 지표 조사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지표 조사는 본격적인 화석 발굴 이전에 육안으로 조사하는 과정이다. 지표 조사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발굴을 할지 결정된다.
◇동아시아 공룡 진화 비밀 풀 열쇠
국내에서 대륵도와 같은 공룡 뼈 화석 산지가 발견된 일은 꽤나 이례적이다. 그동안 공룡 발자국이나 알 화석 산지가 발견되고 연구된 적은 많지만 뼈 화석은 달랐다. 지금까지 발견된 뼈 화석은 원래 있던 지층을 조사해 나오지 않고 우연한 기회에 발견됐다.
이 교수가 2011년 한국 고유 종임을 밝혀낸 ‘코리아케라톱스’는 2008년 화성시의 한 제방에서 발견됐다. 화석이 나온 돌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어 산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국내에서 첫 고유 종으로 인정 받은 ‘코리아노사우루스’도 보성의 공룡알 화석지 인근에서 우연히 발견됐을 뿐, 공룡 뼈를 찾기 위한 공식적인 조사의 결과는 아니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공룡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이미 여러 고유 종을 찾아냈다. 특히 일본은 한국보다 늦게 공룡 연구를 시작했으나 지금은 고유 종 10여 종을 찾고 이를 관광 자원화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후쿠이현에서 작은 공룡 뼈 화석 하나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산 전체를 깎아내는 대규모 조사에 착수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 교수는 대륵도에서 본격적인 학술 조사가 이뤄진다면 예상보다 많은 고유 공룡 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곳은 코리아케라톱스가 살았던 시기와 비슷한 연대의 지층이지만, 특성은 전혀 다르다. 환경이 달랐던 만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공룡 종이 살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주변의 일본과 중국, 몽골은 지역적으로는 가깝지만 공통된 공룡 종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며 “동아시아 지역의 공룡 진화 연구에서 한반도의 연결 고리만 끊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반도가 공룡 다양성의 보고였다는 점은 이전 연구 결과로도 살펴볼 수 있다. 코리아케라톱스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각룡류다. 각룡류는 머리에 뿔을 갖고 있는 특징으로 흔히 ‘뿔 공룡’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공룡 발자국 화석 중 각룡류의 것은 없었다. 이 교수는 뼈 화석을 연구해 처음으로 한국에도 각룡류가 살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대륵도에서도 발자국 화석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종의 공룡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공룡 고유종을 찾는 일은 한국의 자연유산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는 의의도 있다. 국내 유산 연구는 대부분 문화유산에 투자가 집중돼 자연유산은 등한시됐다는 비판이 많았다. 실제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갖추지 않은 나라다. 한때 자연사박물관 건립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경제성 부족으로 멈췄다가 최근 다시 논의되고 있다. 과학계에 따르면 자연사박물관을 만들 정도의 자연유산 표본을 갖추지 못해 여전히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희 천연기념물과장은 “그간 한국이 자연유산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다만 최근 자연유산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관련 인력과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도 “한국이 아직도 공룡 뼈 화석 학술 조사 경험이 없다는 것은 국제 학계에서도 우리 위상을 떨어뜨리는 문제”라며 “공룡 연구는 후대에게 한국의 우수한 자연유산을 물려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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