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태양전지의 위기](상) '세계 최고'였던 차세대 태양전지 경쟁서 中·중동에 밀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낸 탠덤 태양전지 국제공동연구 사업 과제 공고를 확인한 국내 연구자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제안요청서(RFP)에 담길 국제 선도그룹과의 '좋은 협력사례'로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KAUST)이 언급됐다는 이유에서다. 차세대 태양전지 분야에서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중동과 협력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12일 과학계에 따르면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 경쟁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과시하던 한국이 중국은 물론 중동에도 밀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국내 한 과학기술원 교수는 "태양전지 기술 경쟁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는 시기 한국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여전히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선 세계적인 선도국으로 평가된다. 분기별로 각 부문별 태양전지 세계 최고효율을 발표하는 미국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2019년 2월 한국화학연구원은 변환 효율 25.23%로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2월에는 석상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훈교수 연구팀이 변환 효율 26.08%를 달성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차세대 태양전지의 무게중심이 탠덤 태양전지로 옮겨가자 상황은 변했다. 탠덤 태양전지는 탠덤 태양전지는 두 소재를 결합해 각 소재의 단점을 상쇄하는 방식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의 뒤를 이을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이론상 한계 효율은 31% 수준으로 탠덤 태양전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상용화되기도 전에 해외에선 탠덤 태양전지의 개발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현재 가장 각광받는 탠덤 태양전지는 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형태다. 실리콘으로 이뤄진 전지 위에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를 올려 만든다.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가 서로 다른 태양광 파장을 흡수한다는 점을 이용한다. 실리콘은 장파장을, 페르소브스카이트는 단파장을 잘 흡수한다. 이러한 구조는 기존 태양전지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높은 변환 효율을 확보할 수 있다.
탠덤 태양전지의 이론상 한계 효율도 두 전지보다 높은 44%에 이른다. 100만큼의 태양에너지를 받았을 때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35% 많은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이론상 한계 효율은 각각 29%, 31% 수준이다.
세계 최초로 페로브스카이트감응 고체 태양전지를 개발해 '노벨상 수상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박남규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탠덤 태양전지가 차세대 태양연구의 중심에 서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탠덤 태양전지 분야에선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현재 탠덤 태양전지 최고 변환효율 기록은 중국의 태양광 기업인 론지가 보유한 33.9%다. 이보다 앞선 202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KAUST의 33.7%였다. 론지와 KAUST는 연달아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사실상 '2강 체제'를 굳히고 있다.
기존의 실리콘 태양전지가 수 년 내로 차세대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는 만큼 기술경쟁의 '골든타임'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리콘 태양전지의 이론상 광전 변환 효율 한계치는 29%다. 상용화된 실리콘 태양전지의 효율이 27%에 이르면서 실리콘 태양전지의 변환 효율 한계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태양전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연구자들은 차세대 태양전지 강국이었던 한국이 하루아침에 후발주자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차세대 태양전지 상용화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기술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교수는 "국제 기술동향을 살펴보면 탠덤 태양전지는 빠르면 5년 이내 상용화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최고 효율 기록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태양전지는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으로 그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태양전지가 특히 각광받을 분야로 우주항공장비를 꼽았다. 에너지원이 제한적인 우주 환경에선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한 태양전지가 주요 동력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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