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것은 내일의 사람들에게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조사한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 결과 국내 반려동물 양육인구 비율은 28.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10년 첫 조사 당시 반려동물 양육인구 비율은 17.4%였으니 13년 만에 약 62%나 증가한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 2023년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 결과)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개나 고양이 등 가정 내에서 정을 나누며 키울 수 있는 반려동물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지난 10년간의 합계출산율이 1.2에서 0.6명(2023년 4분기)으로 곤두박질 친 변화를 생각하면 내심 안타까우면서도 역설적으로는 한편 희망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려동물 양육인구의 증가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을 나누는 것의 행복과 돌봄의 기쁨, 나 이외의 존재를 책임지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균열을 조장하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얻고, 서로를 이간질하며 한 쪽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문화가 가속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여성들은 출산을 저버린다고 비난받았고, 젊은 세대들은 저 밖에 모른다는 힐난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아무 것도 누려본 적 없는 어린 청춘들조차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를 남녀 갈등의 진창 속에서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종종 나에게 속을 내어 보이는 후배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무책임도 이기심도 아닌, 온전히 이타적인 불안임을 본다. 내가 책임져 줄 자신이 없고,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고, 새로운 역할을 잘 해 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불안의 총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 사회가 방송을 통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 내야만 하는 것처럼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기에 그들은 선뜻 시작하지 못한다.
소셜미디어 속의 결혼생활이란 동화와도 같이 완벽하게 부유하고 로맨틱한 것이 아닌 한 자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된다. '좋아요'의 수는 마치 내 결혼생활의 성패를 점수로 나타내는 것만 같고, 그 속의 모든 이들은 승자 없이 각자 다양한 모양의 과도한 책임감과 불필요한 열패감에 빠진다. 방송에서 반복해 흘러나오는 실패한 결혼과 지난한 육아의 속내는 더욱 그렇다. 돈이 있은 들 애정이 식으니 실패한 결혼이고, 애정으로 결혼할지라도 돈이 부족하면 행복하지 못하리라는 주문을 온 국민에게 뿌린다. 돈과 애정이 있어도 육아란 언제나 공포스러운 것이고, 누구에게 걸릴지 모르는 특별히 어려운 아이들의 존재는 마치 러시안 룰렛과도 같이 이제 막 육아에 나서 보려는 부모들을 막아 세운다. 극단적으로 갈 것도 없이 결혼생활에 대해 우스개로 나누는 이야기들은 또 어떤가. 결혼하여 잘 살아가는 수많은 부부들이 있음에도 결혼 생활의 행복이나 배우자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에 우리 사회는 유난히 야박하다는 생각이다. '팔불출'로 표현되는 노골적 야유, '더 살아 봐'로 압축되는 조롱은 애정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신혼의 부부들 사이를 비껴가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오늘 하루도 결혼생활에 성공하고 있는 수 많은 평범한 이들은 아마 동의할 것이다. 결혼의 좋은 점이란 이미 쌓아 둔 많은 것보다 함께 만들어 가는 작은 것들 속에서 더 값지게 반짝인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서문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모든 조건이 다 좋아 행복한 집도, 부족함이 너무 많아 위태로운 가족도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경제적인 풍요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가정, 자녀의 빼어남이 오히려 부부를 반목하게 만드는 가정, 사회적인 성공이 가족을 멀어지게 만드는 가정들이 수 없이 많다. 반대로 가족 안에 말 못할 아픔이 있음에도 그로 인해 더욱 서로를 의지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며 부부가 똘똘 뭉치는 집도 적지 않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 소아 항암 병동에서 내가 배운 것은 가족이 연합함에 있어 아이의 질병이라는 불운은 생각보다 치명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같은 병을 가진 아이가 입원할지라도 가족들이 보여 준 관계의 변화는 모두 달랐다. 어려운 살림에도 아이의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만날 때마다 웃으며 대화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아이의 잦은 입원으로 인한 일상의 고됨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에 이르는 가정도 있었다. 같은 설명을 전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모든 가족들의 대답은 단 한 번도 같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그 모든 사정을 이겨내는 가족들의 모습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다. 현실에 대한 받아들임과 이 시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감사,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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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 이주영 당선인 repor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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