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K-조선기자재의 ‘슈퍼 을’ 전략
우리 조선산업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미 3년 이상의 일감을 확보했고, 노후 선박의 교체 수요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세계 조선산업은 슈퍼사이클 시기에 진입했음이 확실하다. 이에 따라 올해 국내 조선 3사는 만성적인 저가 수주 경쟁에서 탈피해 수익성이 좋은 LNG선과 암모니아 운반선 등 친환경 고부가 선박수주 시장을 선도해 13년 만에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시황 분석업체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1279척(2634만 CGT)을 수주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23척(1013만 CGT)을 기록했다. 척수로만 따지면 6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CGT(표준 환산 톤수)로 비교하면 2.5배로 그 차이가 대폭 감소한다. 지금은 한국이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 앞서있어도, 중국이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량을 늘려가고 있어 무작정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과의 조선산업의 경쟁력 격차를 벌리려는 노력을 지속함과 동시에 차세대 산업인 조선기자재 육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주요 조선기자재는 세계적으로 3개 이내의 업체에서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고, 장치산업으로서 설비구축에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시장 독점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 조선기자재의 세계 1위 품목은 미미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산·공급하지 못하고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기자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소는 해외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흔히 말하는 ‘슈퍼 을’ 기자재기업 때문에 힘들어한다. 가격뿐만 아니라 사양과 납기 모두 공급자에 의존해야 한다니 조선기술 1위 국가인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업 호황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슈퍼 을’ 기업이 나오도록 조선기자재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선기자재를 조선산업의 하청업체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 슈퍼사이클이 끝날 시기에 조선산업을 대체할 수출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정책 재정립이 필요하다.
해외 ‘슈퍼 을’로 인정받고 있는 조선기자재 전문기업은 대부분 다국적기업으로 설계 제작 판매 공급 유지보수 등 전범위에 걸친 서비스 제공자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들 글로벌 기업은 시스템 통합기술을 기반으로 전세계에 아웃소싱 형태로 생산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모든 조선소를 대상으로 토털 설루션(Total Solution)을 제공한다.
이에 반해 우리 기자재기업은 기술고도화 및 신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다 보니 개별 장비의 경쟁력은 있지만, 시스템 단위의 공급을 요구하는 조선소와 선주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K-조선기자재 패키지화’와 하나의 기자재기업이 아닌 기능적 제품군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모인 ‘시스템별 클러스터화’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국내 기자재기업은 조선소와 직접 거래하면서 수주 단가나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조선소 1차 벤더로서 동일한 공급자 지위를 갖는 수평구조였다면, 이제부터는 시스템 또는 모듈단위로 모여서 하나의 선도기업이 부품기업을 아우르는 수직적 클러스터가 이루어져야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조선기자재 선도기업은 해운사의 요구사항을 직접 반영해 턴키(Turn key) 베이스 공급이 가능하도록 시스템 설계 및 엔지니어링 능력을 보유하여야 하며, 최신 ICT 기술을 접목한 실시간 고장예지 및 유지보수 기술을 내재화해 글로벌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조선소와 선주는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조선기자재 시스템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선소와의 상생협력을 바탕으로 기자재기업 간 적극적인 비용 공유와 함께 보유하지 못한 급소기술은 인수합병 등 공격적으로 기자재 산업생태계를 탈바꿈시켜야 한다. 이런 노력이 진행되면 K-조선기자재도 ‘슈퍼 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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