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기성용 급소 때린 물병만이 아니었다… K리그 과열 팬심 잔혹사

이영빈 기자 2024. 5.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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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전 물병 투척 사태 재발
과거엔 연막탄 투척 사건도

지난 11일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FC서울 골키퍼 백종범(23)이 인천 유나이티드 홈 팬들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휘두르며 포효했다. 서울 2대1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였다. 그러자 갑자기 관중석에서 셀 수 없는 페트병이 날아들었다. 그중에는 물이 가득 든 병도 있었다. 인천 요니치를 포함한 홈 팀 선수들이 관중석 앞에서 그만하라고 수신호를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이를 말리던 서울 주장 기성용(35)이 물병에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괴로워하는 기성용 상태를 서울 의료진이 와서 확인하던 와중에도 물병은 계속 날아왔다. 그라운드 주변에 있던 볼보이와 경기장 진행 요원들도 도망가야 했다.

품위 잃은 프로축구 - 지난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인천유나이티드FC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에서 페트병이 날아든 모습. FC서울 기성용이 날아온 페트병에 급소를 맞고 쓰러진 후에도 페트병이 계속 그라운드에 날아들었다. /연합뉴스

기성용은 “그런 행동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포효했다고 해서) 물병을 던질 수 있는 건가. 뭐가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맹에서 잘 판단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백종범은 “인천 팬들이 후반전 시작부터 나와 부모님 욕을 했다. 흥분해서 그런 동작이 나온 것 같다. 선수로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고 했다. 전달수 인천 대표이사는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과열 관람 문화’는 프로 축구에서 심하다. ‘물병 투척’만 하더라도 지난해 9월에도 있었다. 대전 한 팬이 수원FC에 0대2로 패배하자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물병을 던져 주심 몸을 맞혔다.

그래픽=박상훈

경기장 밖에서도 몸살을 앓는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일명 ‘버스 막기’가 들불처럼 유행했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과 선수들이 탄 버스가 지나가는 주차장 입구를 막아 서서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당시 성적이 좋지 않던 전북과 성남, 서울 등이 주로 당했다. 매 경기 감독과 주장이 버스에서 내려서 길게는 1시간 넘게 팬들과 실랑이해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위협은 제대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 K리그는 관중 돌발 행동은 이를 제지하지 못한 홈 팀에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대부분 벌금으로 끝났다. 대전의 물병 투척은 1000만원, 수원 삼성 연막탄은 500만원 벌금으로 마무리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번 11일 ‘물병 투척’에 대해 “경기 감독관 보고서, 구단 경위서를 받은 뒤 징계 여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갈 전망”이라고 했다. 무관중 징계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팬들이 상대 선수들을 라커 룸에 감금(2017년 8월 부천)하거나, 경기장에 난입해 마스코트를 폭행(2012년 3월 인천)하는 등 직접적인 가해에만 무관중 징계가 내려졌다. 구단도 이런 악성 팬들에게 속수무책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특정 팬이 잘못한 게 확실하다면 출입 금지 등 조치를 할 수 있겠지만, 다수 팬이 일으킨 사태라면 강하게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악성 팬 문화는 유럽 축구 훌리건(hooligan)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1960년대 ‘축구 종가’ 영국에서는 실업자와 빈민층이 정부 보수당에 대한 불만을 축구장에서의 집단적인 폭력으로 표출했다. 이런 문화가 유럽 각지에 퍼져 나갔고,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전후로 한국에 상륙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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