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대통령의 소통·경청·정치,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강경희 기자 2024. 5. 1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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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년 국민 보고… 성과 열거했지만
대통령 스스로는 ‘오답 노트’ 만들고 실패에서 배워야
겸손·성실·간절한 태도의 ‘1000일 국정 수행’이 유일 출구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중구 다동 음식문화거리를 찾아 시민들과 인사나누고 있다./대통령실

취임 2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최저’라는 지지율 성적표를 받았다. 총선 결과에서도 대통령 중간 평가가 냉정하게 매겨졌다. ‘소통·경청·정치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났고, 취임 후 두 번째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청계천에 나와 시민들을 만났다. 달라진 듯도 한데 야당 대표와의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인사들 입에서 소통·정치라기보다 야합 비슷한 거래가 흘러나왔고 인사 쇄신한다면서 회전문·재활용이 여전해 아직은 이게 뭔가 싶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살아있는 권력에 맞선 검사 출신이 대통령 되면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를 만들 것으로 기대했었다. 제일 잘할 일로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걸 못 해내니 총선을 통해 범법자들의 정치적 파워가 몇 단계 레벨업됐다. 한 줌 기댈 것이라고는 소신 있고 용기 있는 판사들이 사법부에 남아있어 제대로, 너무 늦지 않게 법적 정의를 구현해주는 길뿐이다.

여소야대 시즌2의 정치 구도에서 더 취약해진 대통령 입지를 놓고 거대 야당의 흔들기는 심해질 것이다. 22대 국회 개원 전부터 폭주 태세다. 위헌 논란의 13조원 돈 풀기를 1호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정치 고수들로부터 온갖 훈수를 들어도 엎지러진 물에 정치적 묘수는 별로 없을 것 같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년 비슷한 부정 평가를 2년 만에 받았다. 이런 상태로 남은 3년을 보낼 것인가. 대통령은 기자회견 서두에 원고지 35장 분량으로 국정 성과를 열거하고 나름 열심히 했지만 부족했다고 ‘국민보고’를 했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시험 망치고 무작정 열심히 하겠다고 성적이 오르지 않듯, 막연한 다짐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객관적 진단과 고강도 처방이 필요한 듯싶다. 우등생은 ‘오답 노트’를 만들어 약점을 집중 보완한다. 대통령도 스스로 ‘오답 노트’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참고서도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부정 평가 항목이 세세히 나와 있다. 경제·민생·물가(19%), 소통 미흡(15%), 독단적·일방적(7%), 외교(5%), 의대 정원 확대, 통합·협치 부족, 부정부패·비리, 경험·자질 부족, 김건희 여사 문제 등(각 3%)의 순이다. 나열된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같은 문제의 다른 표현들이 중첩돼 있어 몇 개의 큰 잣대로 재분류가 필요하다. 가령 물가와 민생이 부정 평가 1위라고 시장 몇 번 더 다녀가면 풀릴 문제는 아니다. 물가, 불황 같은 제어 불능의 거시 경제 요인과 대통령 탓 사이에는 매개 요인이 작용한다. 경기 나쁠 때는 폭풍우를 맞으며 운항하는 격인데 ‘폭풍우=선장 탓’이 곧바로 성립되지는 않는다. 항로를 이탈한 건 아닌지, 파도에 휩쓸려 간 사람은 없는지를 선장이 세심하게 살피는지 리더십 민감도가 높아진다. 마이너스 요인을 상쇄할 플러스 리더십이 미흡하다는 불신을 주면 등식이 작동한다.

다 지난 일이라 여기지 말고 수험생의 ‘오답 노트’ 공부법처럼 지난 2년간 국정 가운데 실패로 판정 났거나 논란 많았던 ‘5대 오답’ 또는 ‘10대 오답’을 대통령 스스로 뽑아서 복기하고 다른 대응이나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방안은 없었을까를 전략적으로 판단해보는 연습도 도움 된다. ‘어공’ ‘늘공’의 보고 체계에서는 자기 보신용이나 자기 과시용 왜곡된 정보도 숱하게 올라간다. 수천억 원 예산 쓰면서 낙관 일변도로 치달았는데 예상 밖 참패가 나온 부산 엑스포 유치전, 과학자를 비리의 온상처럼 여겨 싹둑 잘라버린 R&D 예산, 의대 증원을 위한 협상 카드의 출발점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막다른 골목으로 단언해버린 의대 정원 2000명 숫자, 정답이 뻔히 보이는데 오답을 고집한 강서구청장 선거,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해병대 채 상병 수사 논란 등 따져봐야 할 사안이 꽤 있다.

경청과 공감, 소통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비결이지만 잘하기가 쉽지 않다. 타고난 성격도 있지만 훈련을 통해 함양된다. 정치 지도자는 경청과 공감, 소통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판단 오류를 줄이고 반대 여론을 설득하면서 더 나은 정책 성과를 내는 것이 진짜 목표다. 검사라는 직업상, 또 성격상 소통·경청·정치가 윤 대통령에게 ‘킬러 문항’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경험한 구체적 국정 사례를 놓고 조목조목 실패에서 배우겠다고 한다면 소통·경청·정치도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필요하다면 변화와 위기 관리 등에 경륜 많은 경영인이나 전문가에게 족집게 코칭을 받을 필요도 있다.

‘오답 노트’ 가운데 대통령이 가장 풀기 싫어할 킬러 문항은 김건희 여사 문제일 것이다. 옛말 틀린 것 없다. 대통령 귀에 가장 거슬리는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사심 없이 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조언자다. 입에 써도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 임기가 1093일 남았다. 추가 실점(失點)은 없어야 한다. 살아온 나날 중에 가장 낮은 자세로, 성실하고 간절하게 1000일 수행하듯 국정 운영의 역량을 높인다면 오늘의 위기가 또 다른 거름이 될 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도, 대통령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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