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신태용 매직’의 빛과 그늘
신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9일 프랑스 클레르퐁텐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축구 대륙 간 플레이오프 기니와의 경기에서 0-1로 졌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68년 만의 올림픽 진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신 감독은 무엇보다 한국 축구팬들에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카잔의 기적’을 이끌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은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조별리그 F조 경기에서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독일을 2-0으로 이겼다. 독일은 F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한국은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 경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신 감독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에서 강호를 상대로 이변을 일으키며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신 감독에 대해 한국이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대한 실망감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꼈던 데 비해 인도네시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더 갖게 되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했던 환경 속에서 인도네시아를 이끌고 일구어낸 성과가 빛이 되어 현재의 그를 비추고 있다.
하지만 신 감독에 대한 스포트라이트 반대편에는 그에게 패배를 당한 한국 축구의 그늘이 있다. 또한 그 그늘 속에는 신 감독이 겪었던 과거 한국 축구와 현재 한국 축구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감독 선임을 둘러싼 한국 축구의 혼란과 난맥상이다.
신 감독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성적 저하로 비난을 받다 경질된 2017년에 월드컵 1년을 남겨두고 긴급히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됐다. 최근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못지않게 당시 슈틸리케 감독을 둘러싼 논란은 극심했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국가 대표팀 감독이 된 신 감독은 시간 부족의 부담을 짊어져야 했고 선수 조합 및 전술 실험을 할 기간이 짧았지만 팀의 안정을 위해 빨리 최종 엔트리 및 전술을 확정하라는 재촉을 받아야 했다. 이런 부분이 그에게는 상당한 애로 사항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번에 상대한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황선홍 감독 상황 역시 비슷하다. 올림픽대표팀을 맡고 있던 황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된 뒤 급하게 국가 대표팀 임시감독이 되었고 두 팀을 오가며 한곳에 집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 이래 고질적인 대표팀 감독 논란을 겪고 있다. 2006년 이후 파울루 벤투, 허정무, 슈틸리케를 제외하고는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클린스만 등 많은 감독들이 1년 남짓하거나 1년도 못 되는 기간 동안 재임했고 극심한 논란과 혼란의 악순환을 겪었다. 이는 한국 축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감독을 선임해야 할 과제를 보여준다. 상황이 급박할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땜질식으로 대처하다가는 소중한 지도자 자원만 소모시키거나, 막대한 기회비용을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성과를 이룬 신 감독의 활약은 한국 지도자의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서 한국 축구의 빛나는 측면이지만, 그의 한국전 승리는 현재 한국 축구에 드리워지고 있는 그늘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는 곧 새 대표팀 감독을 선임할 것이다. 최근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은 그대로 있다. 이번에도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꽤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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