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범죄도시4’ 흥행의 이면… 스크린 독과점 왜 문제일까?

허시언 기자 2024. 5.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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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4' 스크린 80%가량 배정돼 독점 논란
'스크린 독과점' 한국 영화계에 오랫동안 잔존
규모 작은 독립·예술 영화 입지 좁아지게 하고
관객이 다른 영화 볼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아
대형 상업 영화 공백 시 극장에까지 영향 미쳐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최근 영화 한 편을 보고 왔어요. 허공을 시원하게 가르는 주먹, 매력적인 주·조연 배우, 관객을 빵빵 터지게 하는 애드립으로 유명한 ‘범죄도시4’를 보고 왔어요. 큰 인기를 끌었던 지난 범죄도시 시리즈들을 증명하듯 이번 영화도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어요. 라노는 영화를 보기 전 ‘예매 좌석으로 꽉 찼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는데요. 하지만 거의 모든 영화관에서 30분 간격으로 ‘범죄도시4’를 상영했기 때문에 무사히 영화를 보고 나올 수 있었어요.

‘범죄도시4’ 포스터가 걸린 서울의 한 영화관. 연합뉴스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 17일 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을 세우며 등장한 ‘범죄도시4’는 개봉 2일 만에 100만, 4일째 200만과 300만 관객을 동시에 돌파한 데 이어 5일째 400만, 7일째 500만, 9일째 600만, 11일째 700만, 13일째 800만, 17일째 9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매 수치마다 올해 최단 기록을 깼습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1편이 688만 명, 2편이 1269만 명, 3편이 1068만 명의 관객 수를 달성했습니다. ‘범죄도시4’까지 천만 돌파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며 ‘트리플 천만 영화’를 이룰 전망입니다.

그러나 ‘범죄도시4’는 멀티플렉스 극장 3사 스크린의 70~80%가량이 배정되면서 스크린 독점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직후 상영점유율 82.0%, 좌석점유율 85.9%를 기록했습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2017년 영화 ‘군함도’의 상영점유율은 50%대 중반, 2019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상영점유율은 70%대 후반이었습니다. 최근 천만 영화 대열에 합류한 ‘서울의봄’은 60%대, ‘파묘’는 50%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범죄도시4’의 상영점유율은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극장으로서는 코로나19 사태로 막대한 손해를 본 상황에서 흥행이 보장된 영화를 적극적으로 밀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적자로 신음하던 극장 입장에서 ‘범죄도시4’는 ‘서울의봄’과 ‘파묘’에 이은 구세주 격입니다. 여기에 더해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상업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확신의 천만 영화인 ‘범죄도시4’를 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특정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다시피 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극장들도 영화의 흥행을 점치고 경쟁적으로 스크린을 몰아줬죠.

소위 ‘돈이 될 것 같은’ ‘흥행이 보장된’ 영화에만 스크린을 몰아주는 독과점 문제는 한국 영화계에 오랫동안 잔존해왔습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죠. 관객이 원하는 영화라서 많은 스크린을 부여한다고는 하지만, 많은 스크린을 부여했기 때문에 관객이 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뒤집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영화를 볼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으니 관객은 선택지를 한 가지로 좁힐 수밖에 없습니다. 흥행 영화를 극장이 만들어주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관객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특정 영화만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합니다. 상영 기회의 불공정성은 흥행의 양극화, 즉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나눠집니다. ‘대박 영화’가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한 상황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상영관을 두고 나머지 영화들이 경쟁해야 하는데, 이는 규모가 작은 독립·예술 영화들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듭니다.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의 다양성을 헤치고, 나아가 문화의 다양성까지 위협하게 되죠.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는 관객, 영화인뿐만 아니라 극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천만 보장 영화’ 흥행에만 집중할 때는 관객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보장된 천만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거나 ‘천만 영화가 될 법한’ 대형 상업 영화 공백 시에는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전 국민의 5분의 1이 특정 영화를 보는 사례가 흔한 게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고 있죠. 이게 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 때문입니다. 특정 영화에 너무 치우치는 게 문제인데요. 한국도 법으로 스크린 독과점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는 법으로 한 영화가 많은 스크린을 가져갈 수 없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영화가 끝없이 개봉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영화인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웬만한 감독은 차기작을 찍을 수 없고, ‘포스트 봉준호’도 나올 수 없습니다.” 인하대 노철환(연극영화과) 교수는 관객, 영화인, 극장, 나아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서도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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