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또 사문화되는 전세사기 대책···‘협의매수’ 신청 한 달간 달랑 2건

심윤지 기자 2024. 5. 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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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대책으로 내놓은 협의매수 신청이 한 달간 2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일부라도 현금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기대감이 컸지만 신청 건수가 예상치를 크게 밑돈 것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 탓에 대책 시행 한 달 만에 사문화 수순을 밟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 및 피해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대구 전세 사기 희생자를 위한 ‘여덟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향신문이 12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의뢰해 받은 자료를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협의매수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난 3월11일부터 지난달 5일까지 총 4주간 165건의 상담 요청이 접수됐다. 이중 임차인과 사전협의를 진행한 것은 10건, 실제 매입 요청까지 이뤄진 것은 2건에 그쳤다. 매입이 체결된 주택은 물론, 매입 가능 여부가 나온 주택은 한 건도 없었다.

협의매수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 LH가 감정가로 먼저 사주는 대책이다. 피해자들이 줄곧 요구해 온 ‘보증금 조기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진전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선순위 채권자여야 하고, 경·공매가 진행 중이거나 압류가 하나라도 걸려있어선 안 된다는 조건이 달렸다. 한 마디로 등기부 등본이 완전히 깨끗한 집만 매입해주겠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조건을 맞췄다고 끝이 아니다. 매입 요청을 하는 주체가 보증금을 떼먹은 임대인이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협의 매수를 진행하려 했는데, 임대인이 갑자기 ‘나는 전세사기를 친 적이 없다’며 안 하겠다고 한다” “임대인이 서류를 잔뜩 준비해서 신청을 해야한다는데 연락 자체가 되질 않는다”는 경험담이 줄을 이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모든 피해자가 대상이 되기는 어려운 정책”인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전세사기 피해자의 10%(약 1300명) 정도에 달하는 선순위 임차인, 특히 경기도 화성시 동탄 일부 지역에서는 협의매수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실적은 국토부 예상치조차 한참 밑돌았다. 경기도 전체에서는 35건의 상담이 접수됐을 뿐, 사전협의가 성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수준의 조건을 내걸었다고 비판한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단순 보증금 미반환’ 사건과는 달리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여지가 있고 고의성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압류가 전혀 걸려있지 않으면서 임대인과 연락·협조까지 잘 되는 주택은 애초에 전세사기 피해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경매 등 다른 방식으로 보증금 회수가 가능할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세사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고자 ‘손쉬운 해결책’을 내놨다고 본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협의매수가 가능한 피해자는 전체 피해자로 보면 극히 소수”라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후순위 피해자들이며, 이들에 대해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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