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국정 기조가 있기는 한가

곽정수 기자 2024. 5. 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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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끝나자, 이럴 거면 왜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국정기조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한 총선 민심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꼴통’ 대통령이 국민 뜻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 국민이 얼마나 됐을까? 총선 패배 직후 “국정운영 방향은 옳았지만, 국민 체감이 부족했다”고 엉뚱한 얘기를 할 때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최근 윤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심포지엄에 갔다가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윤 정부에 제대로 된 국정기조가 있기는 한가? 특히 경제 분야가 그렇다. 윤 정부는 경제 분야 국정목표로 ‘민간과 시장이 주도하는 경제’를 내세웠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기후위기,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국제적으로 복지와 국가 역할이 강조되는 추세와 맞는지 의문이지만 윤 정부가 스스로 내건 국정목표조차 지키지 않고, 심지어 거꾸로 간 일이 너무 많았다.

물가안정에 실패하자 사정기관을 앞세워 민간기업을 압박하고, 시장가격을 통제하려는 구태를 보였다.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정부 지분이 단 1주도 없는 케이티·포스코 등 민간기업의 경영진 선임에 개입했다. 그것도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까지 동원했다. 오죽하면 보수언론들이 “이게 민간이고, 시장이냐”며 쓴소리를 쏟아냈을까? 그래 놓고 정작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현상) 개선을 내걸고 추진한 ‘증시 밸류업’ 프로젝트에서는 핵심인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조처를 외면해 ‘맹탕’에 그쳤다.

경제난 속에 재정건전성을 전면에 내걸고 정부 책임을 방기하더니, ‘낙수효과’가 실종된 상황에서 엉뚱하게 ‘부자감세’를 일삼다가 사상 최악의 ‘세수펑크’를 자초했다.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이를 수습한답시고 민생예산을 줄이고, 취약계층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밑돌 빼서 윗돌 고이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일도 자행했다. 미래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이에 항의하자 ‘입틀막’으로 깔아뭉갰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이 직접 전국을 돌며 재원대책도 부실한 ‘믿거나 말거나’ 식 선심공약을 남발한 것도 자기모순이다.

윤 정부는 지난 2년간 ‘부자감세’와 ‘반문재인’의 기치만 내걸고 광란의 질주를 했다. 배의 방향키가 없거나 휘어져 있으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없다. 국정기조와 목표는 말 그대로 국정운영의 기본방향이다. 개별 국정과제와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된다. 국정기조가 잘못되고 구호에만 그치는데, 국민이나 기업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고 정책이 성공할 리 없다. 경제와 민생이 파탄 나고 난맥상을 보이는 게 필연이다. 연금·교육·노동 3대 개혁이 표류하는 것도 사필귀정이다 .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빼대로 한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747 공약’(7% 경제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약속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등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지며 지지율이 급락하자, 임기 중반 ‘동반성장’ 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보수진영은 “정부가 우측 깜빡이 켜고, 좌회전했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나마 나라를 위해 천만다행이었다.

윤 정부는 앞으로도 정책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경제를 너무 모르는 ‘무식’, 자신이 경제를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 자신이 잘 모르면서도 국민 여론이나 주위 참모들의 말에 귀를 닫는 ‘무시’ 등 최악의 ‘3무(無) 정권’이기 때문이다. 금융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금융감독 수장으로 앉히며 ‘금융전문가’라고 호도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 말이 맞다면, 의료 사건의 수사검사는 ‘의료전문가’라도 된단 말인가?

정부가 못났으면 야당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주장해 논란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최대 패인으로 부동산 정책이 꼽힌 것을 의식한 듯싶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켜온 공평 과세, 보유세 원칙과 안 맞는다. 당장의 표를 얻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펼치며 부자감세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걱정이다.

정치가 국가 경제와 민생을 위해 올바른 정책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성과를 내기보다 권력욕을 앞세워 표를 좇는 데만 급급하다면, 국가 경제와 민생에 희망이 없다. 갈수록 풍랑이 거세지는데 언제까지 무면허 선장이 키를 쥐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나? 선장을 믿을 수 없다고 승객이 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들 수는 없지 않은가?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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