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유별나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2024년 4월25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모회사인 하이브에서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에 반박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은 케이팝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뿐 아니라 다수 대중을 충격에 빠뜨린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이들은 환호했으며, 어떤 이들은 아연실색했다. 이런 파급력은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민희진’이라는 캐릭터가 대중에게 한 번도 각인되지 않은 종류의 ‘독특함’을 지닌 것처럼 보인 데서 비롯할 것이다. 하지만 민희진 대표의 독특한 행보를 개인의 특수성으로만 설명하면 케이팝 산업에 이전부터 내재해 있던 보편적인 성차별성이 가려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민희진 대표의 행보를 특수하게 보이게 했을까.
기자회견 전부터 케이팝 산업의 ‘아이돌’
기자회견이 있기 전부터 민희진은 케이팝 산업에서 이미 상징적 인물이었다. 기자회견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방탄소년단(BTS)이라는 독보적인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하이브에서조차 ‘민희진 걸그룹’이냐 아니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 여겨졌던 만큼 민희진이라는 인물은 케이팝 산업의 아이콘이자 ‘아이돌’이었다. 민희진은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을 당시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샤이니와 엑소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케이팝 산업에 ‘세계관’이라는 브랜딩 방식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희진이 SM엔터테인먼트를 퇴사하고 하이브의 자회사인 어도어에서 ‘대표’가 되어 처음 데뷔시킨 걸그룹 ‘뉴진스’는 이러한 평가에 쐐기를 박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뉴진스 성공 때부터 민희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갈리기 시작했다. 민희진이 얼굴을 드러내고 자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면서다. 아이돌의 협업자들이 언제나 아이돌 ‘뒤’에 있으면서 결과물로만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이돌 산업이 지닌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팬들이 아이돌 산업 종사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개인적 의견이나 자기 이야기를 하면 아이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민희진은 이미 그런 공식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도어 대표가 된 순간부터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미디어의 주목을 즐기고 때론 뉴진스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냈으니 말이다.
팬들은 동시에 아이돌의 협업자들이 창작자, 나아가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가진다고 느끼면 조롱하기도 하는데, ‘예술병 걸렸다’는 비하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아이돌의 매력을 ‘창작물’보다 ‘상품’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에 더 익숙한 듯하다. 케이팝 산업이 독창성을 창발해내기를 목표하는 것보다 대량 생산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산업으로서의 길을 걸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아도 민희진은 이질적인 인물이다. 기자회견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20년 동안 케이팝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아이돌로 독창성을 드러내는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민희진은 나르시시스트?
민희진은 유능한 기획자라는 평가와 함께 ‘나르시시스트’라는 평이 함께 따라다녔다. 이런 세간의 이미지는 기자회견 이전 하이브발 문건에서 민희진이 “여타 아이돌들이 내 것을 따라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민희진에 대한 여론을 급격하게 악화시키는 장치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민희진의 독창성에 환호해왔다. 그럼에도 민희진이 진짜 그것을 문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것이 케이팝이고, 케이팝은 ‘예술’이 아닌 ‘산업’이니까.
민희진이 이제까지 케이팝 산업에서 독창성을 주창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경영자로서는 양현석과 박진영이 있었고, 아이돌로서는 지드래곤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도 민희진의 캐릭터가 유달리 독특하게 느껴지고, 오랜 경력과 무수한 성공에도 여전히 케이팝 산업에서 ‘위태로운’ 대우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민희진이라는 사람 개인의 캐릭터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기자회견 이전에도 민희진은 ‘성격이 이상해서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성 말이 많은 인물이었다.
이런 추측성 이야기는 민희진이 겪는 위기와 위태로움이 모두 그의 자충수처럼 느껴지개 한다. 하이브 또한 이번 사태에서 민희진의 이러한 대외적 이미지를 충분히 이용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민희진이 현재 케이팝 산업의 4대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유일한’ 여성일뿐더러 이제까지 케이팝 산업에서 독창성을 주장해온 어떤 남성 크리에이터도 그의 유별남이 그를 위기로 빠트릴 요소로 여겨졌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평가되는 최고경영자(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가진 CEO)의 성별 차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남성 CEO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그것은 카리스마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성 CEO가 나르시시스트일 때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 여성 CEO는 나르시시스트 남성 CEO와 달리 비윤리적인 비즈니스 관행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나르시시스트 남성 CEO에 비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자기주장이 강한 남성은 까다롭고 자격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비슷하게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히스테리적이고 통제 불가하며 너무 ‘감정적’이라고 간주돼서다. 이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작동한 결과다. 민희진의 행위가 그를 나르시시스트로 보이게 하지만, 진짜 민희진 대표가 나르시시스트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과도한 부정 평가는 성차별적 편견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연구가 말해준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에서 비속어만큼 화제를 산 것은 업무상 관계를 가족 언어로 비유하는 표현이었다. 자신을 뉴진스의 ‘엄마’라고 칭한다거나, 뉴진스 데뷔 과정을 이야기하며 ‘출산하는 것 같았다’ ‘산고를 느꼈다’고 한다거나, 과거 함께 일했던 이수만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아빠 같아서 조언해드렸다’는 민희진의 가족 비유적 표현은 엇갈리는 반응을 불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을 샀으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기괴함을 느끼게 했다.
가족 표현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인식
이는 케이팝 산업에서 새로운 방식의 언어 사용은 아니다. 팬덤을 비롯해 언론은 케이팝을 설명할 때 줄곧 가족의 언어를 사용했다. 아이돌을 ‘양육’한다거나 국민‘여동생’이라거나 ‘삼촌’팬, ‘할미’팬이라는 용어는 팬덤과 언론에서 일상적으로 쓰였다. 하물며 팬들도 ‘양육’하는 기분을 느끼는데, 실제 그 아이돌 기획에 가장 주도적으로 참여한 대표가 ‘산고’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표현이 쓰이는 것이 기괴하게 느껴진 근본 이유는 암묵적으로 이러한 가족 비유는 비공식적이야 한다는 감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민희진이 기자회견에서 가족 언어를 사용한 결과 자신이 종사하는 산업 내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 산업이 실제로 혈연가족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팬덤이 가족에 빗대어 자신의 팬 활동을 설명하고, 언론 또한 가족에 비유해 케이팝 현상을 설명해왔다는 사실 또한 케이팝 산업이 혈연가족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근거다.
이를 종합해보면 케이팝 산업은 산업 종사자뿐 아니라 팬덤까지도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해왔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서로를 끈끈한 관계로 인식시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었을 것이며, 노동을 노동으로 말하지 못하고 위계를 정당화하는 측면에서는 부정성을 낳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문화적 관행처럼 이뤄져왔던 언어 사용이 민희진을 통해 발화됐을 때 큰 이질감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이러한 민희진의 언어 사용을 뉴진스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과 일에 있어서 ‘프로답지 못함’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사람들은 공식 석상에서 경영의 언어는 달라야 하고 그러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이 전문가의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자회견 이후 민희진의 언사가 무책임하다는 평가가 함께 따라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케이팝 역사가 30년이 되도록 민희진 외에 성공한 여성 대표를 찾아볼 수 없는 케이팝 산업은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하이브만 하더라도 2022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남성 평균연봉은 1억2100만원, 여성은 7800만원으로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 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로 그 격차는 31.1%나 된다. 케이팝 산업에서 아이돌의 상당수와 팬덤의 절대적인 수가 여성임에도 케이팝 산업의 성별 임금 격차는 예외가 아닌 것이다.
‘프로페셔널’하다고 여겨지는 경영의 언어와,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행·네트워크 자원, 하다못해 개인의 감정 자원 등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돼왔을지 간과한 채 민희진 기자회견을 단순히 개인의 특질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제 처음으로 케이팝 산업에서 성공한 여성의 입으로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에 가깝다.
일터에서 여성이 도드라져 보인다면
여성들이 남성 중심적 체제에 입성하면 겪는 경험을 연구해온 지리학자 린다 맥도웰은 저서 <자본 문화>(Capital culture)에서 이런 주장을 한 적 있다. 일터에서 여성은 무엇을 해도 이례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남성의 행동은 언제나 보편적 규칙으로 여겨져서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특이해 보이는 여성이 가리키는 것은 어쩌면 그 집단의 남성 중심성일 수도 있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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