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에서 날아온 물병은 선수 생명 위협하는 '흉기'다, 인천-서울전 초유의 '물병 테러' 엄벌해야

윤진만 2024. 5. 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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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화면 캡쳐
◇기성용이 인천 홈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에 부상을 입는 장면. 중계화면 캡쳐
◇한 인천팬이 다른 인천팬들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모습. 중계화면 캡쳐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수십 개의 물병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개중에는 물이 든 상태로 뚜껑이 닫힌 물병도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흉기가 되기도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법이다. K리그 초유의 사태인 만큼 그에 걸맞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차원의 엄벌이 내려져야 하는 이유다.

사건은 11일 오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 서울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12라운드가 서울의 2대1 승리로 끝난 직후에 발생했다. 서울 골키퍼 백종범이 인천 홈 서포터석을 바라보며 승리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렸다. 이 행동은 인천 제르소의 전반 퇴장과 패배로 인해 부글부글 끓는 인천 홈팬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곧바로 관중들이 마시고 있던 물병이 하나둘 백종범 근처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물병 수십개가 잔디 위에 내리꽂혔다. 전례가 없는 '물병 테러'다. 서울, 인천 선수들이 골문 쪽으로 모여들었다. 백종범을 감싸던 기성용은 물병에 낭심을 맞아 쓰러졌다. 기성용은 경기 후 "부상이 심해지지 않았다"고 팬들을 안심시켰다. 만약 물이 든 물병이 눈, 머리와 같은 부위에 맞았다면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안 다쳤으니 된 것 아니냐'고 안심해선 안 된다.

물병 공격은 15초 이상 계속됐다. 경기장에 남은 선수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던 시간이다. 수비수 요니치를 비롯한 인천 선수들은 두 팔을 펼쳐 인천 팬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그런 인천 선수들 주변으로 물병이 날아왔다. 관중석에선 '그만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팬들도 있었다. 서울 선수들이 부상을 우려해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중앙선 쪽으로 물러난 이후에야 물병 세례가 멈췄다. 잔디 위에는 족히 백여개에 달하는 물병들이 널브러졌다. 이 장면은 중계화면뿐 아니라 팬들이 찍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기성용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분개했다. 백종범의 도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렇다고 물병을 던질 수 있는 건가. 연맹이 잘 판단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기동 서울 감독은 경인더비(인경더비)의 과열 양상은 이해하더라도 선수가 다칠 수 있는 부분은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 구단은 발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다. 전달수 인천 대표이사는 "금일 경기장 물병 투척 사고가 발생했다. 홈 경기를 운영하는 우리 구단은 모든 팬이 안전하게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나 순식간에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관람객과 선수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K리그를 사랑하는 팬과 모든 관계자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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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어떤 징계를 받게 될까. K리그 규정에 따르면 관중이 그라운드에 이물질을 투척할 경우 무관중 홈경기, 연맹이 지정하는 제3지역 홈경기 개최, 300만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 응원석 폐쇄 등의 조처가 내려진다. 연맹이 상벌위원회를 개최할 경우, 물병 투척 행위 외에도 선수 위협 정도, 이물질을 투척한 팬의 숫자, 물병의 마개 개폐 정도 등 세부 항목을 따질 예정이다. 과거에도 K리그에선 볼썽사나운 물병 투척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2013년 12월 울산-포항전, 2017년 8월 수원-서울전, 2019년 7월 서울-전북전, 2022년 4월 대구-수원전 등이 대표적이다. 2011년 7월 포항-서울전에선 포항팬이 던진 물병에 서울 스태프가 얼굴을 다치는 불상사가 생겼다. 2007년 10월 울산-대전전에서 대전팬이 오물을 투척하자 당시 울산 골키퍼였던 김영광이 다시 관중석 쪽으로 물병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즉각 퇴장을 당한 김영광은 상벌위를 거쳐 6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연맹은 대전이 원정팀이기 때문에 문책하는 것이 문제라고 답변해 공분을 샀다. 관중의 물병 투척은 대부분 300만원에서 1천만원 사이의 제재금으로 마무리됐다. K리그 상벌규정의 유형별 징계규정에 따르면 관중의 소요사태를 유발한 클럽에 대하여 500만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하도록 돼있다.

현실적으로 제재금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지만, 초유의 사태인만큼 무관중 경기와 같은 중징계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2022년 6월 우즈베키스탄은 일본과 2022년 아시아 U-23 아시안컵 4강전을 무관중으로 치렀다. 이라크와 8강전에서 홈팬이 경기장 안으로 물병 등 오물을 던진 것이 원인이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K리그보다 관중의 이물질 투척에 관한 징계 수위가 높다. 무엇보다 선수의 안전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홈 구장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구단뿐 아니라 물병 등 오물을 던진 팬을 색출해 직접 처벌하는 추세다. 2022년 3월, 한 에버턴 팬은 애스턴 빌라전에서 상대 선수에게 물병을 투척한 것이 발각돼 4년간 경기장 출입금지 및 100시간 무급 노동 징계를 받았다. 인천은 "우리 구단은 물병 투척과 관련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맹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경기 감독관의 보고서를 확인하고, 경기 평가 회의 등을 거쳐서 상황 파악을 할 예정이다. 또 구단에 경위서를 받는 등 절차 등을 거쳐서 상벌위 회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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