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복 벗고 '소방복' 입은지 30년…'유교의 도시' 첫 여성소방서장

안동(경북)=이창명 기자 2024. 5. 1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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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소방서장]③김난희 경북 안동소방서장
[편집자주] 119안전센터 신고접수부터 화재진압과 수난구조, 응급이송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위기에 처한 현장엔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온 소방대원들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리더가 소방서장들이다. 그런 만큼 소방서장들이 그간 축적해온 경험과 경륜은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 곳곳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24시간 출동준비에 여념이 없는 소방서장들을 만나봤다.
지난 3월 김남희 경북 안동소방서장이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안동소방서

김난희 안동소방서장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여성 소방관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전국 최초 여성 119구조대장, 2016년 경북도내 첫 여성 소방령(5급 사무관), 2021년 전국 최초 여성 119특수구조단장, 2022년 전국 최초 구급대원 출신 소방서장이자 경북 최초 여성소방서장(경북 예천)에 이르기까지 가장 화려한 '최초 이력'으로 통한다. 1994년 입직해 올해로 만 30년 경력을 만들어온 김 서장과 만나기 위해 지난 7일 경북 안동을 찾았다.

김 서장이 소방대원에 지원한 계기는 단순했다. 종합병원 간호사로 재직하던 시절 군인인 아버지와 같은 제복 공무원이 되고 싶었고, 우연히 병원 벽보에 붙은 특별채용 공고에 지원하면서 꿈을 실현했다. 하지만 구급대원이 짊어질 책임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밤낮 가리지 않고 쉬는 시간도 없이 수시로 출동해야 했고, 매일 처참한 사고현장에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구조자의 몸에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했다.

"구급대원으로 근무할 땐 하루 22번까지 출동한 적이 있었지요. 그만큼 구급대원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를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현장 판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사고현장에서 긴급한 환자를 응급처치로 살려낼 확률은 10명 중에 1명 수준이지만 전국 1만3000여 구급대원들은 이런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고강도의 훈련을 받고 달려갑니다."

김 서장이 현장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던 당시와 비교해 최근 소방서의 출동형태나 구조자들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보다 교통사고 같은 대형사고가 크게 줄었다. 대신 지방에서는 고령화로 인해 노인들이 쓰러져 출동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소방대원으로 오래 근무했다면 저출생·고령화를 누구나 실감할 거예요. 예전엔 산모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업무가 흔했어요. 하지만 안동에 올해 1월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한 차례도 산모 이송이 없었어요. 반면에 노인들이 쓰러져서 출동하는 일은 빈번해졌죠. 구급분야도 현장 매뉴얼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소방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현실에 맞게 좀 더 체계를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남희 소방서장/사진제공=안동소방서

전국 소방서 가운데 안동소방서는 부담스러운 자리로 손꼽힌다. 산림이 우거져 수시로 산불이 발생하는데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병산서원을 비롯해 봉정사 무량수전 등 사찰과 고택, 서원, 종가 등 각종 목조문화재를 갖춘 지역이기 때문이다. 목판문화재만 7만여점이 있다. 하지만 김 서장은 아직 가부장적 문화가 짙게 남은 지역사회에서 최초의 여성소방서장이라는 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한다.

"이제 여성소방대원의 비율이 높아졌고 그만큼 저를 지켜보는 후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안동 전체에서 주목하는게 느껴져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어요. 최근엔 여성대원들에 대한 소방업무가 다양해지고, 꼼꼼함이 요구되면서 상황실 등에서 여성 대원들이 더 빛나기도 하고, 여성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늘고 있어요. 앞으로 저보다 나은 후배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김 서장은 최근 신고로 노부부들을 접하면서 현역 소방대원들이 갖춰야할 자질로 주변을 잘 살피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방은 사실 누구보다 인간을 따뜻하게 생각하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일이예요. '빈곤층'이나 '저소득층' 등은 자주 듣는 말이지만 실제로 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소방대원은 이런 분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요.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할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보호자인 할머니도 같이 아픈 경우를 자주 봅니다. 현장에 나간 우리는 두 분 다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구조가 결코 신고받은 환자만 바라보는게 아니예요. 남은 재직 기간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안동(경북)=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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