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정’ 같은 웃음의 힘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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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로 남을 즐겁게 하는 일, 유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다.
요리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여관 주인이 일침을 놓는다.
"농담으로 진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요리사는 "여관 주인에 관한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해 앙갚음하겠다"고 받아친다.
여관 주인이나 광대 전이 곧이곧대로 날 선 이야기를 했다면 어찌 됐을까?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말 듣는 사람도 말 꺼낸 사람도 머쓱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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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있는 농담
재미있는 이야기로 남을 즐겁게 하는 일, 유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다. 그런데 옆 사람이 “네가 할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낯으로 익살을 말하겠다는 거냐”며 쏘아붙인다면?
14세기 영국의 작가 제프리 초서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요리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여관 주인이 일침을 놓는다. “요리사 당신의 요리는 형편없었고 상한 요리를 먹고 사람들이 탈이 났으며 주방에 파리가 득시글거린다”는 것. 분위기가 싸늘해지려는 찰나였다. “농담이었다, 화내지 말라”면서도 여관 주인이 덧붙인다. “농담으로 진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요리사는 “여관 주인에 관한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해 앙갚음하겠다”고 받아친다. 요리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 리수 베리타스(in risu veritas), 농담 안에 진실이 있다는 라틴어 표현이다. 원래는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술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격언이었다. 취중진담, 술을 마시면 사람이 솔직해진다는 서양식 속담. 이 말을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비틀었다. 농담의 힘을 빌려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고 패륜 대결을 펼친 자매, 이번에는 한 남자를 놓고 치정 살인극. 오티티(OTT) 서비스에 새로 올라온 케이(K)-막장 드라마 시놉시스 같지만, 셰익스피어 ‘리어왕’의 이야기다. 자매는 양다리 걸친 나쁜 남자 에드먼드를 두고 입씨름을 벌인다. 언니 고너릴이 “에드먼드와 네가 결혼이라도 하지 그러냐”며 비웃자 “(우스갯소리를 하는) 광대가 예언자가 되는 법”이라며 동생 리건이 받아친다. 당신의 농담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뜻.
‘농담 속의 진실’은 동양 고전에도 등장한다. 사마천 ‘사기’의 ‘골계열전’에는 ‘전’이라는 이름의 광대가 나온다. 진시황제가 함곡관 요새 옆에 거대한 사냥터를 짓겠다고 했을 때, 신하들은 목숨이 아까워 입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때 광대 전이 말했다. “좋습니다! 적이 쳐들어온다면 사슴이 뿔로 받아 물리치면 되죠.”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사냥터 건설을 중단했다고 한다.
여관 주인이나 광대 전이 곧이곧대로 날 선 이야기를 했다면 어찌 됐을까?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말 듣는 사람도 말 꺼낸 사람도 머쓱했을 터. 황제에게 죽임당했을지도 모른다. 웃음이란 달콤한 코팅 덕분에 듣는 사람도 진실이란 쓴 약을 부담 없이 삼킬 수 있다.
자, 그럼 우리의 요리사는 어떤 이야기로 여관 주인에게 앙갚음을 했을까? 아쉽게도 답을 모른다. 초서가 이 이야기를 쓰다 말았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요리사의 유머가 자못 궁금하다.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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