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임에 불안이 숨는다, 간단명료하게 핵심만

한겨레 2024. 5. 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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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말보다 글
메신저·SNS·이메일 소통 늘어
길면 요점 흐려지고 오해 소지
불편한 마음 전할 때도 마찬가지
‘짧은 글’ 흥분한 감정에도 제동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삶에서 많은 소통이 점점 더 말보다 글로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업무에서도 일상에서도, 가까운 사이에서든 잘 모르는 사람에게든, 문자나 이메일, 메신저, 에스엔에스(SNS)로 대화를 주고받는 일이 현저하게 많아지면서 말보다는 글이 일상이 된 느낌입니다. 하루라도 무언가를 쓰지 않고, 누군가의 글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래선지 제 강의에도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참여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모두가 바쁜 요즘, 집중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글을 통한 소통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짧고 쉽게 빨리 전달하는 게 중요한데, 때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생깁니다. 예전에는 간단히 끝났을 일이 더 지체되고 서로가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짧은 글의 힘이 필요한 순간일 겁니다.

한번 읽고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누군가와 소통할 때 사용하는 글은 말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어체와 구어체의 중간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방송작가들이 써주는 대본이 딱 그 위치입니다. 문어체는 바른 어순과 정확한 문법이 필수입니다. 우리 모두 글을 쓸 때 그런 압박감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 할 때는 편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던 문장도 글을 쓸 때는 떠올리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평소 말할 때 사용하는 구어체는 짧지만 간혹 불완전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을 때도 있죠.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 다시 묻거나 알아듣기 쉽게 다시 바꿔서 말해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표정이나 눈빛, 동작 등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이 보충되기도 하고요. 글로 소통할 때는 바로 이 뉘앙스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말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써줘야 합니다. 길어지면 오히려 오해의 소지가 많아지고 요점이 흐려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익히고 연습해온 짧은 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간결할수록 더 선명하게 내 의도가 전달될 수 있습니다. 내용이 많을수록, 문장이 길고 복잡할수록 메시지는 희석되고 읽는 사람의 주의는 분산됩니다. 감상적이고 화려한 어휘들은 상대방의 이해와 집중을 방해하게 됩니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직설적으로쓰세요. 예를 들어볼까요. 친구와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집 근처로 장소를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내일 우리 보기로 했잖아. 벌써부터 너 볼 생각에 마음이 들뜨네. 근데 내 일정도 좀 꼬이고 회사 일과 집안일로 스트레스도 심한 상태라 완전 엉망진창이야. 혹시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나도 될까? 매번 내가 약속을 바꿔서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대신 밥은 내가 사도록 해줘.” 참 길죠? 이렇게 고치는 건 어떨까요? “내가 사정이 생겨서 내일 약속 장소를 우리 집 근처로 바꿔야 할 것 같아. 정말 미안해! 대신 내가 쏠게.”

읽으면서 바로바로 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한번만 읽어도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고쳐봐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일단 말로 해보고 그걸 그대로 글로 옮긴 다음 다시 바른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내 실수를 인정할 때나 사과할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처럼 감정이 개입되기 쉬울 때 우리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말이나 글이 길어지곤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요점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좋습니다. 모든 생각을 전하려고 과하게 설명하면 불필요한 표현들이 추가되고 그러면서 점점 감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감정이 전해지고 상대방도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덧붙이는 말에 불안을 숨긴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참 와닿는 표현이었는데요, 짧은 글은 감정적으로 흥분하기 쉬운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말보다 글로 소통하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안 해서 후회하는 경우보다 해서 후회하는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매번 다짐해도 생각 없이 툭 내뱉어버리고 나서 후회할 때가 많은데, 글은 보내기 전에 한번 점검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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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글이 주는 좋은 인상

“의사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잘되고 있다는 환상이다.”(조지 버나드 쇼)

글로 소통할 때 가장 답답한 경우는 상대방에게 응답이 없거나 내 의도와는 다른 답변을 받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우선시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메시지를 명료하게, 그리고 왜 중요한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게 좋습니다. 질문은 한번에 하나씩, 같은 내용끼리 묶어서 전달하세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보다 선택지가 적을수록 답하기가 쉽다는 점도 고려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중요한 내용은 시작 부분이나 끝 부분에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해서 강조하는 게 사람들에게 잘 인식됩니다. 중요하게 전달해야 할 내용이 여러개라면 그 모든 내용을 한꺼번에 보내지 말고 따로따로 나눠서 제목을 다르게 붙이거나 시간 간격을 두고 전송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저는 방송작가 후배나 제자들에게 강조합니다. 진행자·출연자가 내가 쓴 글을 그냥 그대로 읽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써주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뭔가 어색하거나 책 읽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건 진행자가 아니라 작가의 잘못이라고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는 사람이 이해를 못했네’가 아니라 ‘그렇게 오해하게 쓴 내 잘못’이라는 자세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제대로 전달되도록 신경쓴다면 더욱 원활한 소통이 될 것입니다.

“수채화에서 색을 칠한다는 건,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것이다. 그래서 늘 어디를 어떻게 비울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최근에 만난 건축가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그동안 수채화를 보면서 느꼈던 왠지 모를 편안함과 여유가 그런 거였나 싶었습니다. 그 비우기가 말보다 글로 전할 때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 등장하는 대사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말보다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떤 때는 말이 필요 없는 순간, 말이 아닌 다른 뭔가가 필요한 순간도 있을 겁니다. 말이든 글이든 그런 적절한 순간들을 잘 포착해서 비워둘 수 있는 배려 역시 짧은 글의 힘일 듯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듯 글로 전해지는 그 사람의 인상은 더 깊이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감정과 행복은 전염된다고들 합니다. 나의 감정이 내가 내뱉는 말을 통해 전달되듯 이제는 내가 쓴 글, 내가 표현한 단어와 어휘들을 통해 더 멀리 더 넓게 퍼져나갈 겁니다.

5월은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썼던 손편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골라낸 메시지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그동안 쑥스러워서 전하지 못했던 표현들과 함께 말이죠.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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