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놀이터가 된 천년 고도

조인원 기자 2024. 5.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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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순간 26. 한국의 마틴 파, 이계영 사진가
이계영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연작/ 사진가 이계영

놀러가기 좋은 계절이다. 어디를 가도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사진에 대한 욕심들이 지나치니 타인들을 무시하는 꼴도 자주 본다. 여행지든 식당이든 미술관이든 이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촬영은 다 허용된다면 조용한 사색이나 식사, 관람은 다 포기해야 한다.

사진가 이계영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자주 찾는 여행지인 경주, 제주, 부산을 다니면서 15년 넘게 그곳에서 마주친 부조리한 풍경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있다.

이계영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연작/ 사진가 이계영

잔디 위에서 맨발로 요가를 하거나 아예 윗옷을 벗고 반바지 차림으로 누워서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도 있는 이곳은 경주의 어느 고분 앞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첨성대나 불국사의 다보탑 앞에서도 관광객들의 관심은 천 년이 넘은 유적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보다 사진의 배경일 뿐이다.

사진가 이계영
이계영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연작/ 사진가 이계영

사진들은 부조화의 연속임에도 묘하게 눈에 띄면서 낯설다. 사진가는 일부러 강조할 부분에 카메라 플래시를 쳐서 배경과 피사체를 분리했다. 영국의 매그넘 사진가 마틴파(Martin Parr)처럼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풍경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진가 이계영을 지난달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계영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연작/ 사진가 이계영

고향이 부산인 이계영은 부모님이 계시던 경주를 갔다가 첨성대 앞에서 우연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아이들을 보고 처음 낯선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천 년 된 유적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른 공간으로 쓰이는지를 보게 된 것이다. 이후 경주와 부산, 제주 등을 찾아다니면서 여가 문화와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길들이나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부산 사하구 감천동 문화마을도 도시재생을 위해 계획된 것인데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비면서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가는 역사나 생활공간은 사라지고 오로지 소비를 위해 리조트가 된 고도와 유적지, 생활공간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2018년까지는 모든 사진을 스트레이트로 찍다가 2019년부터 표현에 중점을 두고 메이킹 포토로도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아카데미 교수로 15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실습뿐 아니라 사진 인문학 같은 사진 이론도 가르친다. 개인 사진 갤러리와 갤러리에서 사진 강좌도 열고 있는데 6년 과정이라고 했다. 그동안 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가르치는 게 재밌고 준비하면서 공부도 된다고 했다. 다음은 이계영 사진가가 말한 사진론이다.

'아름다운 자연 제주' 연작/ 사진가 이계영

여가문화를 관심 있게 추적해왔다. 35밀리 컬러필름으로 찍고 다시 디지털로 스캔을 받아서 레트로 느낌을 강조하는 보정을 한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졸업 후 대기업에서 공장자동화(FA) 업무를 하다가 인터넷이 나오면서 웹마스터나 인터넷 홈페이지 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데이터용 사진을 직접 찍다 보니 많은 사진을 찍게 되고 이후 사진만 찍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사진을 이론적으로 배우면서 사진을 그냥 찍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닫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익숙한 풍경' 연작 / 사진가 이계영

원래 행사나 제품 같은 상업사진이나 공모전 사진들을 주로 찍다가 프린트해서 갖고 가니 한 선생님이 “사진은 좋은 데 너무 힘이 들어갔으니 힘 좀 빼고 찍으라”는 조언을 듣고 ‘카메라 셔터를 살살 누르라’는 소린 줄 알았다.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같은 사회학 책을 읽고 나서 그동안 사진 작업을 해오던 경주나 부산, 제주 시리즈 등의 관광사진이 바로 현대 사회나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제주' 연작/ 사진가 이계영

하루는 제주도를 갔다가 커다란 하루방 뒤에 커다란 등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 내가 바라보는 것을 계속 여기서도 해야겠구나 하고 작업 방향을 정했다. 어느 날 새벽까지 내가 그동안 관광 사진들을 왜 이렇게 했나를 글로 써보면서 정리하니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나에게 다큐 사진을 계속 찍게 만들었다. 낙동강이 흐르는 부산 강서구 명지 쪽 포구가 신도시 아파트가 생기면서 아름답던 풍경이 다 사라졌다. 그것이 경주로 바뀌었고 시대에 따라 바뀌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경주, 부산, 제주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자연 제주' 연작/ 사진가 이계영

장소와 어울리지 않은 제스처, 스트로보를 치면서 공간과 아이러니를 보여주려고 한다. 미묘한 충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장소에서 5시간이나 6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지역에만 있다 보니 시야가 좁은 것 같아 자주 외부를 가고 갤러리를 만든 것도 함께 사진들을 공부하고 소개하기 위해 시작했다. 몇 년 전에는 서울에서 첫 개인 전시도 했다.

공대 출신이라 코딩도 직접하고 AI 사진작업도 하고 있다. 그러나 다 해봐도 결국 기술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익숙한 풍경' 연작 / 사진가 이계영

풍경 사진을 찍는 것은 사적인 불안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마음속에 담겨진 풍경을 보여주려고 한다. 사진가의 생각이 확장되고 보고 느껴야 한다. 공부도 중요하다. 어느 순간 내가 공부를 했던 것이 눈앞에서 마주할 때 사진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사진에서 도상적 기호가 너무 강하면 다른 것들이 안 보인다. 힘을 뺀다는 의미는 그런 것이라고 본다.

결국 사진에서 시간성과 공간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다른 것들을 말할 수 없고 낯설게 하기를 통해 나 같은 경우엔 사진에서 평면화된 모습이거나 안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가령 나무가 일렬로 늘어선 것을 줄기 부분만 크롭해서 돌리면 마치 밭이랑 같다. 익숙한 모습을 일부러 모호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자연 제주' 연작/ 사진가 이계영
사진가 이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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