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폭증하자 살아남으려 먹던 ‘이 음식’…K푸드 원조 도시 부산의 맛 [Books]
한국전쟁때 피란민 몰려들며
값싸고 양많은 돼지국밥 인기
70년대 꼼장어가죽 수출 활기
껍질 벗긴 꼼장어 서민 안주로
돼지 사골육수에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따끈한 돼지국밥은 소고기로 만든 곰탕, 설렁탕보다 저렴하면서도 든든해 소울푸드처럼 여겨졌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부산에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유명한 돼지국밥 집이 꼭 있었을 정도다. 본래 ‘경상도 냉면’으로 불렸던 밀면은 함경남도 흥남시에서 동춘면옥이라는 냉면집을 운영하던 한 피란민이 흥남철수 당시 부산에 정착하면서 탄생한 음식이다. 메밀가루나 감자전분을 구하기 어려운 부산에서 밀가루로 뽑은 면으로 냉면을 만든 것이 지금의 밀면이 된 것이다.
신간 ‘부산미각’은 부산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 속에서 부산의 지역음식이 어떻게 발달해왔는지 샅샅이 살펴보는 미식 여행기다. 최진아 부산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필두로 부산에서 오래 살면서 부산 음식을 먹고 자란 인문학자·번역가 등 14명이 모여 부산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썼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탕부터 해물, 고기, 면, 간식, 안주, 주류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여느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표 형식을 띤다. 구미가 당기는 메뉴를 골라 읽기에도 좋다. 부산의 대표적인 제철 음식을 월별로 소개한 ‘열두 달 부산 진미’ 역시 유용하다.
지리적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항구도시인 부산은 예로부터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식재료가 식탁을 가득 채웠다. 이를 두고 대표 저자인 최 교수는 “부산은 ‘가마 부(釜)’에 ‘뫼 산(山)’을 쓴다. 부산의 문화는 모든 것을 한데 넣고 끓여내는 커다란 가마솥 같아 이름 그대로 대륙과 해양을 통 크게 품는다”며 “부산의 재래시장에 진열된 수많은 식재료들, 그것을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일상에 담긴 대륙과 해양의 이야기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음식에 담긴 부산의 생생한 삶과 문화도 전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경공업 중심지로 성장한 부산에서는 1970년대 소가죽 대신 꼼장어 가죽을 응용해 피혁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로 수출된 꼼장어 가죽만 연평균 1000만달러에 달했다. 당시 자갈치 부둣가에는 하루종일 꼼장어 껍질을 벗겨내는 아낙들로 분주했다. 껍질을 벗긴 꼼장어는 한 대야 가득 담아도 몇 천원 밖에 하지 않았다. 꼼장어 가죽 사업은 1990년대 들어 시들해졌지만, 꼼장어 고기는 외환 위기 등 어려운 시절 사람들이 저렴하게 소주에 곁들이는 안주로 오랜 인기를 누렸다. 꼼장어라는 단어도 ‘곰장어’가 경상도 사투리로 된소리화한 것이다.
부산 음식은 최근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푸드’의 조상격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흔히 나는 대구는 18세기 조선에서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구는 중국에서 나지 않아 중국인들이 진미로 여겼고, 북경에 가는 사람들은 대구를 꼭 챙겨갔다. 일본의 문인이자 관리였던 아메노모리 호슈는 1729년 초량 왜관에 와서 머물며 대구를 선물 받고 크게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어묵이 어묵을 대표하는 것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일본의 오뎅(어묵)이 부산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어묵은 동남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엔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등 이슬람 문화권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 음식에 깃든 역사와 스토리, 식재료와 조리법,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고 먹으면 훨씬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법이다. 이 책은 부산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상에서 무심코 부산 음식을 식탁에 올리거나 먹었던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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