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큰형님 눈치 안 봐”…먼저 금리인하 나선 ‘이 나라들’에 미국 긴장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5. 1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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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남미·유럽 신흥국
美·英 기준금리 눈치 안 보고
잇달아 선제적 금리 인하
美 ‘통화 리더십’ 약해지고
경기 부양 시급해진 영향
금리차 머니무브도 적은 편
“이례적 현상 계속 이어질 듯”
남미와 유럽의 신흥국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통화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리더십이 퇴색하고 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신흥국들의 다급함이 합해진 결과다. 남미 신흥국 금리인하에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이들 국가의 통화정책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글로벌 통화정책의 ‘웩더독’현상이 심해질 전망이다.

남미의 브라질은 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브라질은 올 들어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1.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말 연11.75%였던 기준금리는 5월 현재 연10.5%로 떨어졌다. 같은 날 유럽의 스웨덴은 8년 만에 기준금리를 연4%에서 3.75%로 0.25%포인트 내렸다.

올 들어 신흥국들이 금리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 칠레는 기준금리를 연8.25%에서 연6.5%로 1.75%포인트 내렸다. 멕시코도 지난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경제 위기 속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 아르헨티나는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이후 기준금리를 연133%에서 연50%로 83%포인트나 낮췄다.

유럽 신흥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로화를 쓰지 않아 나름대로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인 체코 헝가리 등도 기준금리를 내렸다. 체코는 올 들어 기준금리를 연7%에서 연5.25%로 1.75%포인트, 헝가리는 연10.75%에서 연7.75%로 3%포인트 인하했다. 유럽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4.5%로 계속 동결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유럽 선진국에 속하는 스위스도 올해 기준금리를 연1.75%에서 연1.5%로 0.25%포인트 낮췄다.

반면 미국을 비롯해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기준금리는 요지부동이다. 한국도 이들 나라와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신흥국들이 선진국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리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신흥국들은 선진국들보다 자본 시장이 취약해 금리를 내리면 외국 자본이 이탈해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긴축’국면에서는 신흥국들이 먼저 금리를 올리는 경우가 있지만 금리를 내릴 때는 신흥국들이 선진국의 금리 정책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신흥국들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유발하는 몇 가지 이유가 꼽힌다. 먼저 ‘미국의 통화정책 리더십’이 현저하게 약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말 이후 금리 정책과 관련해 일관되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면서 시장의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올해 초 금리 인하를 강하게 시사했던 제롬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에는 금리 인하가 미뤄질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물가, 고용 등 경제지표가 들쑥날쑥하고 미국 연준이 11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아울러 미국이 더 이상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신흥국 입장에서는 외환시장의 불안 심리를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었다.

신흥국이 금리를 낮춰도 자본 이탈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 금융시장의 움직임도 신흥국들의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 올해 기준금리를 내린 신흥국들의 통화가치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브라질 헤알화는 올 들어 통화가치가 5.6% 떨어졌다. 칠레, 체코, 헝가리 등도 통화가치 하락률이 3-5%선에 머물렀다. 멕시코 통화가치는 오히려 1.2%올랐다. 이 기간 달러인덱스를 기준으로 한 미국 달러화 가치가 3.8%오른 것을 감안하면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금리를 80%포인트 이상 내린 아르헨티나 통화가치만 8.4% 정도 떨어져 하락폭이 컸다. 우리나라 원화 가치는 이 기간 6% 떨어졌다.

코로나19이후 경기가 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점도 신흥국들이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는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브라질은 2024년과 2025년 모두 2%대 초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이 올해 2.7%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신흥국으로서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칠레 멕시코 체코 헝가리 등도 향후 1-2%정도의 저성장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이들 신흥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선진국 물가목표치(2%)에 비하면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경제상황 속에서 신흥국들 입장에서는 물가 부담을 다소 감내하더라도 금리를 내려 경기를 띄우는 것이 정책의 우선순위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오석태 SG증권 본부장은 “미국의 금리 인하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있고 신흥국들의 경기부양 노력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신흥국들이 먼저 금리를 내리는 현상은 뚜렷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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