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극동지역 한인들의 무차별 강제 이주 역사 재조명

김용출 2024. 5.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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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을 즉각 남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아랄해 행정지역, 발하슈호 지역 등으로 추방하라. 추방되는 한인들에게는 개인 재산과 생필품, 농사 도구의 소지는 허용된다. 집과 농장 등과 같이 가져갈 수 없는 재산은 보상이 있을 것이다."

1937년 8월21일, 소련 총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회 의장 몰로토프의 서명이 담긴 이 같은 취지의 소련 인민위원회 결의문 No. 1428-3266ss '러시아 극동지역의 국경지역으로부터 한인들의 추방에 관하여'가 승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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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태양/ 존 K. 장/ 박원용 옮김/ 소명출판/ 3만2000원

“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을 즉각 남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아랄해 행정지역, 발하슈호 지역 등으로 추방하라. 추방되는 한인들에게는 개인 재산과 생필품, 농사 도구의 소지는 허용된다. 집과 농장 등과 같이 가져갈 수 없는 재산은 보상이 있을 것이다….”

1937년 8월21일, 소련 총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회 의장 몰로토프의 서명이 담긴 이 같은 취지의 소련 인민위원회 결의문 No. 1428-3266ss ‘러시아 극동지역의 국경지역으로부터 한인들의 추방에 관하여’가 승인됐다.
존 K. 장/ 박원용 옮김/ 소명출판/ 3만2000원
“우리는 추방을 앞에 두고도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어렸었고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놀다가 학교에도 갔습니다만 더 이상 수업도 없었고 숙제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간다고 즐거워했습니다.”

당시 겨우 8살에 불과했던 이 블라디미르는 온 가족이 극동지역에서 추방돼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할 당시를 이같이 회고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들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추방에 직면해 매우 어쩔 줄 몰랐고 화가 났다고 얘기했다.” 특히 일부는 도망갔고, 일부는 추방 및 이주 조치에 항거했다. 하지만 도망자나 항거자들은 모두 체포돼 강제 이주됐다. 이 과정에서 저항을 멈추지 않던 한인들은 가차 없이 사살됐다.

추방된 한인들은 소와 닭, 돼지들을 이웃에 넘겼고 대신 소금에 절인 고기와 생선, 채소를 기차로 가져갔다. 이들은 40량 이상의 객차로 구성된 특별열차에 올랐다. 이동하는 데에는 대략 30일에서 45일 정도가 걸렸다. 아이들과 노인들은 이동과 이후 정착 과정에서 취약해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한인들은 임시 거쳐도 확보하지 못한 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광활한 초원, 갈대가 우거진 습지 혹은 집단농장에 도착했다. 스탈린에게 보낸 한 보고서에 의하면,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된 6000가구 가운데 단지 1000가구에게만 집이 제공됐다고 한다. 강제 추방과 이주 과정에서 10% 이상의 한인이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책 ‘위선의 태양’은 기존 연구에서 미흡했던 구술사 방법론을 적극 활용해 1937년 극동 한인들의 강제 이주 역사를 규명한다. 특히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한 러시아 중앙 문서고는 물론 극동지역 문서고 자료를 적극 활용한 점도 돋보인다.

저자는 극동 한인에 대한 추방과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는 일종의 대숙청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첩자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향후 영토적 자치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며, 중앙아시아 지역의 노동력 부족 해결 등을 겨냥한 것이라는 기존 분석에 더해 차르시대부터 존재했던 인종주의적 시각이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계승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듯 보이는 ‘스탈린의 태양’이 결국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소비에트 체제에 기여하면서도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유지 가능하다고 공언했던 ‘스탈린의 태양’이 ‘위선의 태양’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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