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은의 고전 노트] 태양신의 손녀가 극악무도 살인마가 되기까지
메데이아 신화는 기원전 8세기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처음 등장하지만, 그녀가 기구한 로맨스 호러의 주인공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기원전 5세기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부터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등지고 친오빠를 토막 내고 자신이 낳은 두 아이까지 살해하는 무서운 여자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요 마녀 키르케의 조카인 메데이아는 어쩌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가 되었나.
한 남자를 지독히 사랑했는데, 하필 그가 나쁜 남자였기 때문이다. 독(毒)과 마법에 능하고 성질이 포악한 그녀를 겁도 없이 배신했기 때문이다. 이아손은 숙부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기 위해 메데이아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나라로 황금 양털을 훔치러 온다. 미남 영웅 이아손에게 홀딱 반한 메데이아는 그의 임무 완수를 돕고, 이아손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원수가 제 딸들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계략을 짜 복수를 대신한다. 하지만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는데, 그녀의 악행으로 조국에서 추방돼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한 탓이다.
망명지에서 메데이아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면서도 그는 더 높은 신분, 풍족한 재물을 바란다. 자기 삶에 불만족하는 야심가는 필히 배신자가 된다. 이아손은 처자식이 보는 앞에서 망명지 왕의 딸과 재혼한다. 이 뻔뻔한 변절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두고 메데이아와 이아손이 벌이는 언쟁은 서로에게 정떨어진 이혼 법정의 부부처럼 적나라하다.
남편 이아손은 위기 때마다 유능한 아내의 손을 빌리고, 바로 그 때문에 진정한 영웅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메데이아는 “한 번 아이를 낳느니 차라리 세 번 전쟁터에 나가겠다”는 여장부라서 구차한 결혼 생활이 힘들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시대의 관습과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 남녀가 부부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설득력 있게 묘파한다. 행복한 결혼은 사랑보다 어렵고 행운보다 드물다. 가정의 화목은 누구 한 사람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절제와 조화의 덕으로써만 지켜진다. ‘메데이아’는 가족이야말로 우리가 일생을 부대껴야 하는, 작지만 분명한 ‘사회’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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