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가만히 멈춰서 찬찬히 살펴보렴, 봄이 우리 곁에 뭘 데려왔는지

이태훈 기자 2024. 5.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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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어느새

김정선 글·그림 | 산하 | 24쪽 | 1만5000원

“나가자고?” 강아지 토리가 목줄을 물고 와 아이 옆에서 낑낑댄다. 겨우내 쌓인 창밖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털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보지만, 토리는 문밖 겨울 냄새를 맡자마자 도로 들어와 버린다. 아직 바깥은 너무 춥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책 속 풍경은 섬세하게 변화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더 많이 보인다. 아이는 아직 목도리를 꽁꽁 싸매고 걷지만, 산책로 곁 강물 위 얼음은 녹고 있다. 해가 가까운 나무 위 높은 가지엔 연둣빛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산하

벤치에 앉은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면, 나무 이파리도 초록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겨우내 검었던 강물빛이 다시 파랗게 돌아오고, 산책로의 누렇던 잔디도 조금씩 녹색으로 변해간다.

“오늘은 왔나?” “아직.” 지나가듯 주고받는 말들은 봄을 기다리던 이들의 머릿속 생각에 자막을 입힌 듯하다.

살아가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조바심 낸다고 기다림이 짧아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아이와 강아지 토리는 봄을 기다리며 매일 산책을 나간다. 자연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마침내 기다림이 보답받는 순간이 온다.

/산하

노란빛, 분홍빛 꽃망울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고 나무와 잔디도 연한 초록으로 물들었을 때, 봄이 온 걸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토리다. 봄이 온 잔디밭에 제 얼굴과 몸을 비비는 토리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이가 토리와 함께 잔디 꽃밭에 누워 팔을 벌리면 풀 내음 봄 냄새가 책장 밖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산하

다시 표지를 보니, 아이와 품에 안긴 강아지가 열린 문 틈새로 바람이 실어 온 봄을 느끼고 있다. 어느새, 짧게 머물다 갈 봄이 온 것이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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