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탐미주의 대가가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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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예요."
한 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내가 죽으면 묻어달라. 그런 다음 100년 동안 무덤 옆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신간에서 나쓰메는 "여자인지 무언지 모를 것이 서 있는데/희고 얇은 옷감 사이로 비치는/눈썹이 덧없이 검고 곱도다"(시 '귀신이 곡하는 절에서의 하룻밤' 중), "오랜 세월 흐트러진 검은 머리. 물귀신도 뒤엉켜 흐느적거린다"(시 '물 밑의 느낌' 중)라며 일본 귀신을 섬뜩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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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의 얼굴은 희고 갸름했다. 뺨에 따뜻한 핏기가 돌아 발그레했다.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내가 죽으면 묻어달라. 그런 다음 100년 동안 무덤 옆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여자의 눈이 감겼다. 긴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자는 죽어 있었다.
‘나’는 구덩이를 파고 여자를 묻었다. 부드러운 흙을 뿌려 여자 위를 덮었다. 동쪽에서 해가 떴다 서쪽으로 졌다. 그렇게 셀 수 없이 해는 뜨고 졌다. 어느새 묘비에서 푸른 식물 줄기가 비스듬히 뻗어 나왔다. 줄기는 점점 길어졌다. 끝에서 새하얀 백합이 피어났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벌써 100년이 다 됐구나.” 단편소설 ‘열흘 밤의 꿈’의 내용이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작품 13편을 ‘기담(奇談)’이라는 주제로 모았다. 기담의 뜻인 ‘이상야릇하고 재밌는 이야기’에 걸맞은 기묘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현실인지 꿈인지 불명확한 환상적 이야기나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이 포함돼 으스스하다.
신간에서 나쓰메는 “여자인지 무언지 모를 것이 서 있는데/희고 얇은 옷감 사이로 비치는/눈썹이 덧없이 검고 곱도다”(시 ‘귀신이 곡하는 절에서의 하룻밤’ 중), “오랜 세월 흐트러진 검은 머리. 물귀신도 뒤엉켜 흐느적거린다”(시 ‘물 밑의 느낌’ 중)라며 일본 귀신을 섬뜩하게 묘사한다. 영국에서 2년간 유학한 만큼 영국 런던탑에서 귀신을 만나는 단편소설 ‘런던탑’,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분석한 평론 ‘맥베스의 유령에 관하여’같이 영문학 색채가 묻은 작품도 담겼다.
나쓰메는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년) 등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탐미주의적 색채를 드러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작품집을 엮은 일본 문학평론가 히가시 마사오는 나쓰메가 활동하던 20세기 초 일본 문단엔 기담 열풍이 불었다고 신간에 썼다. 나쓰메 역시 시대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팬들에겐 나쓰메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즐기는 기회가 생겼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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