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 성장 가능, 피크 멀었다” vs “정부 주도는 한계”

한우덕.사공관숙 2024. 5. 11.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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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후원 ‘중국 경제정책 토론회’
류차오 중국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원장이 9일 서울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국경제에 대한 이해’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피크 차이나(Peak China)’ 담론은 아직도 유효하다. 중국 경제가 지난 1분기 5.3%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 청년 실업, 인구 노령화 등의 리스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서방의 많은 전문가들은 “천정을 찍은 중국 경제가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2035년쯤 2%대 성장세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게 바로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이다. 우리 말로는 ‘새로운 품질의 생산력’. 한마디로 성장 엔진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신질생산력’은 지난 3월 양회(兩會) 때 ‘정부업무보고’에 등장한 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영 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임가공 공장, 부동산 투자 등에 의존해 왔던 중국 경제가 앞으로는 하이테크 제조업, 첨단 서비스 등에서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뜻이다. 신에너지 자동차, 신소재, 바이오 의약품, 상업 항공 우주, 인공지능(AI)…‘정부업무보고’에서 제시된 새로운 품질의 생산력 항목이다.

지난 9일 중국은행 서울지점과 주한중국문화원, 한중우호협회(회장 신정승 전 주중대사)가 주관하고 주한 중국대사관·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후원으로 열린 ‘중국 경제정책 토론회’에서도 ‘피크 차이나’ 논쟁과 ‘신질생산력’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발표자인 류차오(劉俏) 베이징대 광화(光華)관리학원(경영대학)원장은 ‘피크 차이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면서 ‘혁신에 의한 성장’ 잠재력을 강조했고, 질의에 나선 한국 전문가들은 ‘신질생산력’ 전략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류차오 원장은 지난달 리창(李强)총리 등 국무원(중앙정부) 부장(장관)급 이상 인사를 모아 놓고 ‘전문 학습’을 실시할 정도로 정관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학자다. 그는 “일부에서 2~3%의 성장을 얘기하지만, 중국 경제는 앞으로 장기간 5% 성장세를 유지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연 5% 성장은 그 규모로 볼 때 오스트리아의 전체 GDP보다 크다. 매년 오스트리아 규모의 시장이 중국에서 창출될 거라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라면 미국 경제 추월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류 교수의 답은 역시 ‘신질생산력’이다. 그는 ‘총요소생산성(TFP·Total Factor Productivity)’이라는 용어로 논리를 설명했다〈요약문 참조〉. TFP의 핵심은 ‘혁신에 의한 성장’이다. 기업의 기술 혁신과 경영 혁신, 정부의 자원 배분 혁신 등을 통해 이뤄진다. 류 원장은 “중국이 그동안 디지털 경제 실현, 정보 인프라 구축, 산업구조 현대화 등의 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해 왔다”며 “이 노력이 TFP 증가율을 높이고, 나아가 전체 GDP 수준을 떠받쳐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신질생산력’이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전부는 아니다. 류 원장은 탄소 중립 분야 투자, 정부의 자원 배분 효율화 등 광범위한 분야가 중국의 TFP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도 그중 하나다. “중국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은 7.4%에 불과하다. 그러나 농촌 취업 인구는 전체의 26.4%에 달한다. 2035년까지 농촌 취업 인구를 6%로 줄인다고 가정하면 약 1억3500만 농촌 인구가 도시로 나와야 한다.” 영농 기계화를 통해 농업 분야 TFP를 높이고, 남는 인력을 도시로 이주시켜 노동 생산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소외됐던 농촌이 중국 경제 성장의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중국은 특정 지역,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해 선제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효과가 차례로 나머지 지역, 분야에 전파되게 하는 전략으로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그런 점에선 ‘신질생산력’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선택적 성장은 전체적으로는 시장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 당연히 부작용도 따른다.

지만수
지정토론에 나선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질생산력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제조업 투자가 과잉 설비로 이어지고, 이것이 전 세계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에도 부작용을 예상했다. 그는 “지금은 도농 간 소득 격차가 문제 되고 있지만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 경우 도시 내 불평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 연구위원은 이어 중국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민간영역의 확대가 더 효율적이라는 견해를 제기했다. 그는 “중국 기업 중에는 국가 소유 형태가 많다”며 “이들 국유기업에 대한 국가 지분의 축소, 또는 사유화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다면 재정 정책 공간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 연구위원의 지적은 “중국이 저성장 체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로 집약됐다. 그는 “총요소생산성을 높여 성장률을 유지시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수용하면서 세계 다른 국가와의 충돌을 줄이는 게 지금 단계에서는 오히려 더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기순
박기순 성균관대 교수 역시 과잉 투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실질생산력이라는 게 결국 제조업에 관련된 얘기인데 과잉 투자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며 “이는 투자 자본의 효율성을 저하해 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정부 주도의 혁신이 갖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실질생산력은 결국 민간의 창조적 파괴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혁신을 이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남은영 동국대 교수(글로벌무역학과)는 “류차오 원장의 발표에 따르면 신질생산력이라는 용어가 과학기술을 넘어 농업, 재정정책으로까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며 “결국 국가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책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의 과잉 투자와 이로 인한 ‘디플레 수출’은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중국이 국내 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한 제품을 해외 시장에 덤핑 수출하고 있다’며 방어벽을 높이고 있다. 전기자동차, 태양광 등 ‘신질생산력 상품’ 분야가 특히 더 심하다. ‘신질생산력’이 글로벌 경제에 또 다른 균열을 야기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중국은 멈출 뜻이 없다. 관영 CCTV는 요즘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의 반도체 설계회사, 베이징 이좡(亦莊)의 위성항공 벤처 회사 등을 돌며 ‘신질생산력’ 성공 사례를 시리즈로 선전하고 있다. ‘1950년 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을 방불케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 “중국, 고속성장 지나 고품질 발전 시기 진입”

「 중국은 지금 고속성장기를 지나 ‘고품질 발전(高質量發展)’ 시기로 나아가고 있다. 고속 성장기에는 자본·노동 등 개별 생산력 투입이 성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고품질 발전 시기에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 더 중요한 성장 요인으로 등장했다. 기술혁신, 경영혁신, 자원 배분 효율화 등이 TFP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지난 10여년 중국의 연평균 TFP 증가율은 약 1.8%에 그쳤다. 많은 전문가는 TFP가 2% 이하로 떨어졌다는 점을 들어 중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4%에 그칠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그런 분석은 맞지 않다. 공업화가 마무리된 지금 중국의 TFP는 2% 이상으로 다시 증가할 수 있다. 우선 적극적인 연구개발(R&D)투자가 TFP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GDP대비 R&D 투자 비율은 2.4% 수준으로 올라왔다. R&D 투자가 기술혁신을 낳고, 금융과 결합하면서 산업이 고도화 경로를 밟고 있다. 둘째는 탄소 중립이다. 중국은 2050년까지 이 분야 최고 300조 위안(약 41조5000억 달러)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동안 부동산 투자가 성장을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탄소 중립 투자가 성장을 추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는 거대 내수시장, 넷째는 하이테크 제조업 증가다. ‘신질생산력’이 적용되는 영역이다. 다섯째는 공동부유다. 영농 기계화로 농업 부분의 TFP를 높이고, 농촌의 잉여 인력을 도시로 이주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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