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도 때려치고 쓱쓱…근데 피카소가 대놓고 질투한 라이벌요? [0.1초 그 사이]
생 로랑 소장 ‘노란꽃…’ 692억 낙찰
늦은 나이에 공부 ‘야수파 거장’으로
거트루드·피카소 등 작품 가치 알아봐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패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1936~2008). 한국에서는 줄여서 ‘입생로랑’으로 알려진 명품 브랜드 창립자인 그가 유명을 달리하고 만 이듬해,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가진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 경매였죠.
경매가 진행된 당시 2009년은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만큼은 불황도 비켜간 ‘세기의 경매’가 이뤄진 건데요. 낙찰 총액만 무려 3976억원. 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매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말끔히 씻겨나간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왜 이브 생 로랑의 유품 이야기냐고요. 당시 숱한 화제를 뿌리며 경매 최고가로 낙찰된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 작품은 바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가 그린 ‘노란꽃, 푸른색과 분홍색의 테이블보’입니다.
무려 692억여원에 팔린 이 그림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대놓고 질투한 라이벌 마티스, 바로 그가 ‘야수파의 리더’로 자리매김 한 시기인 1911년에 제작된 작품이거든요. 당시 마티스의 나이는 마흔셋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작업한 해에 마티스는 그 유명한 ‘붉은 화실’도 그렸습니다. 실제로 붉은 화실 작품을 처음 만난 날의 충격을 고백하는 현대미술 화가들이 한둘이 아닌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 마티스가 그린 정물화는 이전 세대가 답습해오던 규칙을 ‘이까짓 것 뭐…’라며 철저히 깨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파격적인 화풍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는 마티스의 작품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아 사물의 유한한 형태를 완전히 소거하게 되죠.
마티스는 정물화를 그리면서 ‘사물’ 자체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물 간의 차이점’을 그릴 뿐이었죠. 그런데 그의 캔버스 화면 속 이미지는 왜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마티스가 이뤄낸 ‘혁명적인 발상’이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작품 값이 수백억대에 다다랐을까요.
“내 손에 물감 상자를 받아 든 바로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나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마티스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별 의심 없이 변호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맹장염을 앓아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 누워 시간을 보낸 그때 마티스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뀝니다. “시간이나 때우라”며 어머니에게 건네받은 물감 상자가 마티스를 뒤늦게 화가의 길로 이끈 겁니다. 그의 나이 스물하나였죠.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한참 늦은 나이입니다. 그러나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은 우연한 기회에 마주한 직감을 오롯이 믿었습니다. 그렇게 마티스는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자기 앞에 주어진 모험을 멈추지 않았고요.
그날을 기점으로 마티스는 서른 살이 넘도록 명작들을 모작하면서 그림의 기초를 연마했습니다. 예술학교에 부랴부랴 입학했지만 정형화된 미술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정통 화법은 마티스의 스타일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연주의를 거부하고 사실주의에서도 벗어나는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1826~1898)의 화실에 제자로 들어가 자신만의 시각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표현한 바로 그 시간이, 마티스를 성장하게 만든 ‘진짜 힘’이었습니다. 선구안을 가진 스승을 만난 게 가장 큰 축복이었던 거죠. 덕분에 마티스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지 불과 10여 년 만에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예술에 나타난 ‘야수파’는 이렇게 시작된 건데요.
“설령 매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어도, 개성을 강조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그림을 대하는 마티스의 일관된 태도를 잘 보여주는 한 문장입니다. 실제로 그가 경외한 이들은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조르주 피에르 쇠라, 폴 시냐크였습니다. 모두 시대의 정형성에서 탈피해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화풍으로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를 이끈 작가들이죠. 그런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면서도 마티스는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독자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마티스는 빛의 변화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색을 썼죠. 강렬한 보색대비와 역동적인 붓놀림으로 새로운 방식의 화풍에 거침없이 달려든 건데요.
마티스가 서른여섯에 그린 작품 ‘모자를 쓴 여인’을 감상해 볼까요. 그림이 공개된 당시엔 분명 문제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푸른 원색 계열로 표현된 화면 속 여성, 그는 폭발적인 색채에 꼼짝 못하고 붙들려 있는 것만 같거든요. 3차원 원근법은 철저하게 무시됐고요. 그래서 거친 물감 자국이 더욱 선명해 보입니다. 인상주의 화가가 담아내는 섬세한 색채 표현마저도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선과 색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졌죠.
이 그림은 마티스의 부인 아멜라가 담긴 작품이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부인을 그린 게 아닙니다. 마티스에게 이미지란 그저 색채를 단순하게 겹쳐 쌓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은 ‘순수한 색’이 가진 잠재성을 표현하는 그 자체인 건데요. 실제로 작품의 모델이었던 마티스의 부인조차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날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화를 냈었다고 하니, 당시 색을 얼마나 파격적으로 해방시켜 표현한 인물화였을지 짐작이 되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이 출품된 전시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조각가인 도나텔로(Donatello·1386~1466)의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었는데, 이를 본 한 평론가는 “도나텔로가 야수들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라며 혀를 찼죠.
그런데 현대미술사의 새로운 획이 그어지는 순간은 여지없이 드라마틱 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비난하는 평가 덕분에 마티스는 ‘야수파’라는 칭호를 얻게 됐거든요. 또 이 작품은 미술계의 원조 큰 손 컬렉터이자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맏아들인 마이클 스타인에게 팔립니다. 그렇게 그의 그림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고, 파산 직전에 내몰렸던 마티스의 삶은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현란한 색채를 뽐내는, 말 그대로 색채지상주의가 막이 열린 겁니다. 마티스를 가리켜 괜히 ‘색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자, 작품들을 좀 더 볼까요. 마티스가 이듬해인 1906년에 발표한 ‘삶의 기쁨’이란 작품입니다. 마티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자, 그의 일생일대 작업의 출발점이 된 그림인데요. 극도로 강렬한 색, 세부 묘사가 없는 평면적인 배경, 그늘처럼 드리워진 벌거벗은 여인의 실루엣…. 무엇보다 선을 그리고 그 안을 색으로 채우는 회화 방식을 완전히 전복한 마티스가 담아낸 행복감에 빠진 사람들. “마치 아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평생토록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마티스의 예술철학이 화면에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마티스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라는 당시 혹독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이 가져올 바람을 알아보고 구입한 컬렉터가 바로 레오 스타인이고요. (다만 그는 “지금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형편없는 물감 얼룩”이라며 혹독하게 비판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오 스타인의 집에 걸린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본 화가가 있었으니, 피카소입니다. 마티스를 뛰어넘고 싶었던 피카소가 이 그림을 보고 붓을 들고 거침없이 그려나간 작품이 바로 ‘아비뇽의 처녀들’이고요. 이때까지도 마티스는 피카소를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지만, 피카소는 선배에 대한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 피카소는 마티스에게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혁신이라고 믿었던 것만 같습니다.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묘사하고 이를 하나로 결합하는 입체파 회화의 서사는 이때부터 시작되거든요. (피카소를 다룬 지난 연재글에서 관련 이야기를 더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마티스의 참신한 시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기쁨’으로 명성이 높아진 마티스가 자신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따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그림이 바로 ‘춤’인데요. “나의 모델들은 그저 어떤 실내에 있는 엑스트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인체다. 그들이 내 작업의 중심 주제다.”
마티스가 그토록 집요하게 붙잡고 있었던, 화면 속 인체에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느껴지시나요. 평평한 면에 그려진 동질한 색채, 그리고 굉장히 단순한 선. 그런데 손을 잡고 둥글게 도는 화폭 속 인물들의 누드에서 왜 시계 방향으로 도는 무희가 느껴지고, 음악의 화성처럼 어우러지는 조화가 감지되는 걸까요. 한 마디로 단순 명료한 화면에서 색과 형태의 관계를 생생하게 살린 장본인이 마티스인 겁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앙리 마티스의 물감이 어떻게 숨쉬며 캔버스를 너머로 확대되는지, 마지막으로 소개한 작품 ‘춤’ 이후의 세계를 조명합니다. 특히 프랑스 니스의 빛에 매료된 마티스가 더욱 완숙한 표현으로 부신 고정관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화가 절정기에 발병한 암과 ‘종이 오리기’ 기법으로 극복한 작가 인생의 2막도 다룹니다. 수백억원에 거래된 마티스의 그림 이야기과 함께 말이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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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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