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들은 왜 “맞다이로 들어와”에 심쿵했을까 [에스프레소]

송혜진 기자 2024. 5. 1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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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록 만들고 ‘맞짱’ 열풍… 선동이라고 다 무시할 순 없어
乙의 울분을 못 읽는 리더는 여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며칠 전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의 가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을 협박해 현금 3억원을 받아냈다는 유튜버가 경찰에 구속됐다는 뉴스를 봤다. 피의자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누군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낯익은 유튜버였다. 전·현직 폭력조직원들과 맞붙는 영상들을 찍어 올려 구독자 30만명을 거느리게 된 사람이다. ‘맞짱’ ‘정의구현’ 이라는 키워드만 검색창에 넣어도 이 사람 영상이 금세 뜬다.

그가 구속되고 여론은 “그 사람 그럴 줄 알았다”고 반응했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유튜브에서 영웅 대접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조폭들에게 “자신 있으면 나랑 카메라 앞에서 맞짱 뜨자”면서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은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찍었다. “자극적이다”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당시엔 “통쾌하다”는 반응에 묻혔다. 사람들은 ‘그가 경찰도 못 하는 일을 한다’고 했고 ‘쓰레기 같은 놈들을 대신 응징해준다’고도 했다.

최근엔 또 다른 유튜버가 활약 중이다. 그는 각종 사연·제보를 받고 중고차 사기범을 직접 잡으러 다닌다. 영상은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의 얼굴과 실명, 때론 회사 주소지까지 가감 없이 공개한다. 영상 편집 중 어디까지가 과장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순 없지만, 보는 이들은 수십만 건의 ‘좋아요’와 1000개가 넘는 댓글로 화답한다. ‘입법부 사법부가 손 놓은 일을 하고 다니시네요.’ ‘를 국회로 보냅시다!’ 언급한 ‘맞짱 유튜버’ 사례처럼 이 열광이 언제 식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나라 법도 공권력도 못 믿겠으니, 직접 응징하고 때리고 잡아주는 유튜버에게나 기대 보겠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식자층이라면 ‘포퓰리즘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 ‘한심한 자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고 혀를 차겠지만, 이들에게 열광하는 군중의 분노는 생각보다 뿌리 깊을지 모른다. 지난 총선 결과가 그 단적인 예이고, 영화 ‘범죄도시4′가 곧 관객 1000만명을 넘긴다는 소식은 또 다른 방증이다.

점유율 80%를 넘겼다는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은 대단한 기승전결이나 반전을 기대하진 않는다. 바라는 건 딱 하나다. 마석도(마동석)가 내 눈앞에서 그놈과 나 대신 맞짱 떠주고 응징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가진 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확증편향적 사고, 사회 시스템이 균형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불신과 의심이 팽배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해법을 원한다. ‘주먹’ ‘맞짱’으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복잡한 법률·정치 용어보단 눈앞에 보이는 화면이나 ‘때려잡았다’는 실체로 확인하고 안심하길 원한다. 세상의 리더가 이들의 불안을 이해할 수 없고 교감할 수 없다면, 그는 앞으로도 결코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뒤에서 비겁하게 XX하지 말고 맞다이로 들어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 한마디로 자신에게 불리했던 여론을 완벽하게 뒤집었다. 그가 수천억원대 자산가이고 보통의 직장인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 그가 하이브와 맺은 계약이 정말 ‘노예 계약’인지 아닌지, 그가 요구하는 ‘30배 풋옵션’ 조건이 정당한 것인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는 사실 등은 순간 모두 휘발됐다. 불공평한 세상과 ‘맞다이’ 뜨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든 을들이 그에게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선동일 수도 있고 얄팍한 군중심리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배울 점은 있다. 뒤로 XX하는 세상에 질린 이들의 울분이 그 한마디에 다 같이 터졌다는 것. 그 울분을 더는 얕볼 수만은 없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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